요즘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정치판을 보면 각국의 정상·지도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오직 관중들의 인기만을 의식하는 배우들이 설익은 연기를 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준비된 연설들은 화려하고 거창하나 그 순간만 지나면 공허한 메아리로 다가옵니다. 인류가 물질문명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자못 우쭐해진 21세기입니다. 그러나 지난 3000년의 인류 역사는 정치라는 관점으로 보자면 퇴보와 타락을 거듭했습니다.
법치가 최고의 정치행위며 제도라고 착각들 합니다. 인격적 성숙이 담보되지 않은 사회에서의 법치는 허울뿐인 제도입니다. 인격의 완성과 도야라는 인성교육이 사라진 법치는 힘 있고 약삭빠른 인간들이 활개치는 세상이 됩니다. 현재 우리는 사회와 국가의 근본 단위인 가정이 와해되고 가족과 부부간에도 법률이 간여하고 조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즉 인간이 주체적 인격체가 아닌 수동적 피조물로 추락한 세상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 제도들의 주인 노릇을 못하고 오히려 그 제도들에 매몰되고 사로잡혀 낑낑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 사회에 있어 정치란 무엇인가요? 비뚤어지고 틀어진 사람을 바르게 만들고, 사람이 병에 걸리면 다스려 건강한 삶으로 되돌리는 노력이 치료듯 사회와 국가를 건강한 상태로 만들어 구성원들의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도록 바닥을 짜주는 행위입니다. 그 바닥이 견고하면 인간 모두가 주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정치는 아무나 하고 싶다고 달려들어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닙니다. 공자께서 그토록 구구절절 말씀하신 그 정치가 ‘중용’이란 책에 오롯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눈곱이 끼어 그 진면목을 보지 못할 뿐입니다. 공자 이래 중국 땅에서는 현재까지 한 번도 그 정치가 현실에서 실현된 바가 없습니다. 언제나 이론으로만 존재해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이 땅에서 그 중용의 정치를 보란 듯이 실행한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서양의 역사와 식민사관에 매몰돼 단지 그 실체를 보고도 자각하지 못할 따름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선 전기 세종조부터 계유찬탈(癸酉簒奪) 전까지의 역사는 재조명돼야 합니다. 말이 아닌 실제 몸으로 정치의 요체를 보여주신 분이 계십니다. 임란 7년간 오로지 백성과 더불어 호흡하며 조선이라는 나라와 백성들의 든든한 방패가 됐던 통제사 충무공입니다. 앞으로 이 땅에서 정치에 입문해 이 나라와 백성을 위해 봉사해 보겠다는 사람들은 부지런히 두 사례를 공부하고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위대한 정치가의 역할은 국민 모두를 신명나게 하는 것입니다. 즉 국민 모두를 주연으로 역할 지우는 이가 위정자입니다. 위정자가 주연에 몰입하면 국민은 재미가 없어집니다. 또한 정치는 사심이 개입되면 안됩니다. 그래서 대학 8조목 중 수신에서 성의(誠意), 정심(正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대한이 건국된 지 70년이 되고 그간 숱한 사람들이 정치에 입문을 했지만 어떻게 하면 사심(私心)을 제거할 수 있는가를 강의한 텍스트가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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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공사·해사를 둬 고결한 인품과 지도력을 겸비한 지휘관들을 양성한다는 취지는 잘 달성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지도자나 단체의 지휘관은 언제나 그 책임감으로 걸음걸이가 진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요즘 정치인들이나 군지휘관들에게 진중한 걸음걸이를 찾기가 참 어렵습니다. 왜 일이 터지면 내 잘못이라고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이토록 없는지요? 평소 그 책임감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면 걸음걸이가 풀어집니다. 우리는 인재를 키워내는 데 그간 너무 안일한 것은 아니었는가, 성찰해 봐야 합니다.
김덕수(정산 鼎山)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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