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장용진 기자] 술에 취해 범죄를 저지른 경우 처벌을 감경해주는 ‘주취감경’을 폐지해야 한다는 국민여론이 거세지만 법원을 비롯한 법조계에서는 신중론이 대세다.
성범죄나 가정폭력과 같이 일부 범죄에 대해 주취감경을 배제하는 것에는 동의하면서도 전면 폐지는 곤란하다는 것이 법조계의 시각이다.


주취감경 폐지를 골자로 하는 법률안이 18대 국회(2008년~2012년)이후 40여건이 제출됐지만 번번히 국회 담당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기 힘든한 이유도 법원과 법조계의 신중한 태도가 원인이다.

검찰간부 출신으로 변호사로도 활동한 바 있는 현직 국회의원은 “법사위에 법조인 출신들이 많이 포진해 있다 보니 알게 모르게 현직 법조계와 인식을 같이하는 경우가 있다”라고 말했다.


정도의 차이가 크지는 않지만 법조계 가운데에서도 법원의 분위기는 가장 보수적이다.

공식적으로 법원은 법 개정에 대해 중립적이다. 8일 대법원 관계자는 “여러가지 법률개정안이 제출돼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형법의 대원칙인 책임주의와 사회적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입법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선 법관들의 시각은 다르다. 법관들은 대체로 현행법률을 그대로 두더라도 주취감경 적용범위를 좁힌다면 국민여론을 반영할 수 있다면서 성폭력 등 주취감경을 반드시 배제할 필요가 있는 범죄는 개별법률로 정하면 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서울시내 법원에 근무하는 한 부장판사는 “(주취감경을) 일률적으로 폐지하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과실범(실수로 범죄를 저지름)의 경우처럼 주취감경이 필요한 사례가 있는가 하면 주폭(酒暴)처럼 오히려 가중처벌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며 개별범죄에 따라 달리 정하거나 법관의 재량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처럼 법원이 주취감경 폐지에 소극적인 이유는 현재도 주취감경이 필요적 감경사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감경여부가 법관에 재량에 달렸다면 법원의 양형기준을 조정하면 되지 법률을 제·개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현행 형법 제10조 2항은 심신미약을 감경사유로 정하고 있을 뿐 음주를 심신미약 범주에 포함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는 따로 규정하지 않고 법관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최근 법원에서도 주취감경을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판례가 형성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분위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방법원에서 근무하는 중견 법관은 “조두순 사건 이후 법원도 음주로 인한 범죄에 대해 과거처럼 관대한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면서 “최근에는 주취감경을 인정하는 판례가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는 정신질환처럼 주취상태에 대해서도 의사의 진단 등 감정서를 첨부하도록 하는 재판부도 생겼다”면서 “범행 당시 상황 뿐만 아니라 평소 행실, 음주습관, 범행이후의 태도 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변호사 등 법조계 일부에서는 법원이 그간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대형로펌 소속인 한 중견 변호사는 “법조문에도 없는 주취감경이 당연시 된 것은 과거 음주로 인한 행패에 관대했던 법원의 관행 때문”이라면서 “조두순 사건 이후 사회적 인식이 빠르게 변했는데 법원의 더딘 발걸음이 법개정 요구로 이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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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법관들 중 일부는 국민의 법개정 요구를 ‘포퓰리즘’이라며 백안시하는 경향도 있다”면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자세가 아쉽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장용진 기자 ohngbear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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