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乙의 甲질]乙의 갑작스런 여론몰이…'적폐 프레임'에 빠진 재계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사실관계조차 다른 을(乙)의 반복된 여론몰이에 사정기관들마저 동조하면서 '대기업=적폐'라는 잘못된 프레임에 우리 사회가 빠져들고 있다." 최근 노조와 협력업체, 가맹점주 등 이른바 '을(乙)의 반란'에 직면한 대기업들이 무력감과 절망감에 깊은 한숨을 토해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중소벤처기업부 등이 대기업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는 분위기를 틈타 을의 반란이 '을의 갑질'로 악화하는 현실에 참담한 심경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시장에서 생존 경쟁을 벌이는 대한민국 대표선수들이 정작 국내에서는 타도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은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매우 불행한 상황"이라며 "법과 제도로 충분히 다뤄지는 사안임에도 기자회견을 통해 여론에 호소하고 정부 관료와 정치권, 시민단체가 부추기는 모습이 일종의 프레임화로 진행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與·정부·시민단체 등에 업고 여론몰이
5일 현대자동차에 기술 탈취를 당했다고 주장하며 기자회견을 한 비제이씨의 주장은 석 달 새 세 번째다. 지난 9월 경제민주화네트워크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ㆍ민생상황실이 공동 주최한 토론회, 10월 같은 단체와 민주당 의원들이 주선한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에서도 같은 주장을 했다. 이미 1년 전에도 민주당 의원들과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가 참여해 민주당 대표회의실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도 이 주장이 나온 바 있다. 5일 기자회견은 중기부가 출범하고서 다시 한 것이다.
현대차가 공개적으로 반박 자료를 낸 것은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화에 핵심 기술을 빼앗겨 납품에서 배제됐다는 에스제이이노테크라는 중소기업의 주장도 종종 등장한다. 김연철 ㈜한화 기계부문 대표는 국정감사에 나와 "고객의 요구사항을 맞추지 못해 납품이 안 됐다"고 반박한 바 있다.
LG유플러스의 경우 휴대전화의 비상호출 기능과 관련, LG텔레콤 시절인 2003년부터 한 중소기업으로부터 특허 침해 소송을 당해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새로운 사실이 나타났다는 이유로 다시 고소를 당한 상태다.
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을 기치로 내건 이후 정부, 정치권, 시민단체에서는 반(反)대기업 정서를 확산시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중기부 출범식에서 "대기업의 갑질과 불공정 거래로부터 중소기업을 지켜내겠다"고 했고 중기부 초대 수장인 홍종학 장관은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 방지가 첫 과제"라고 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대기업 '갑질' 차단의 하나로 중소기업 기술 유용(기술 탈취) 문제에 대해 직권조사를 할 방침"이라고 거들었다.
-잘한다 하더니 이젠 적폐로 내몰아
대기업을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정부의 엇갈린 행보다. 공정위가 직접 작성한 2017년 판 공정거래백서를 보면 6700여개 하도급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업체의 97.2%가 2015년과 비교해 2016년에 거래 관행이 개선됐다고 했다. 대금 부당감액, 기술 유용, 부당 위탁 취소 등 불공정행위는 23.8% 감소했다. 반대로 중소 협력사에 대한 기술 지원 금액과 기술 보호 실적은 전년 대비 각각 1.7배, 4배 증가했다.
공정위는 "대ㆍ중소기업 간 협력이 한층 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공정위가 지켜보는 가운데 협력사와 공정거래 약속(협약)을 맺은 대기업은 2007년 제도 도입 이후 현재까지 1246개, 중소기업은 24만여개에 이른다. 2016년에는 220개 기업이 2만9000여개 협력사와 협약을 체결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공정위와 동반성장위원회가 선정하는 동반성장 최우수기업 명단에는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 SK텔레콤, 포스코, LG전자, LG유플러스 등 주요 기업들이 망라돼 있다.
-중견과 중기 간 갈등이 더 큰 문제
김 위원장은 최근 "하도급법 위반 제재 대상의 79%가 중소 사업자"라면서 "정부에 무조건적 보호를 요청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공정위(2015년 기준)에 따르면 하도급법 위반으로 신고된 사건 1325건 중 83.5%(1106건)가 중견기업과 중소기업 간 거래에서 발생했으며 대기업은 16.5%(219건)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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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한 전국경제인연합회 협력센터장은 "대기업과 1차 협력사 간 동반성장과 공정거래는 양호한 편"이라며 "이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동반성장에서 중견ㆍ중소, 중소ㆍ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으로 확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는 이번 갑을 논란이 자본 대 노동, 정규직 대 비정규직과 같이 정치적 프레임화되는 것을 경계한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라는 프레임이 대기업 중심의 불평등과 양극화, 왜곡된 경제구조하에서 중소벤처기업의 대기업ㆍ글로벌기업으로의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논리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친노동정책과 증세, 상법개정안과 같이 재벌개혁의 지렛대로 활용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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