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으로부터 그것은 떠오른다. 그것은 오로지 검은색이다. 그것은 오로지 검은색이었다가 검은색이고 검은색이 될 것이다. 검은색 속에서 검은색이 떠오른다. 검은색 속에서 검은 바람이 일어난다.


 그것은 검은색.

 불어오는 것이다. 우리는 휩싸이는 것이다. 검정의 바람이 되는 것이다.


 구겨 넣은. 긴 손처럼. 긴 혀처럼.

 그리고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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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속에 우리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묻히는 것이다. 숨 막히는 것이다. 다시 일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림=이영우 화백

그림=이영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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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실린 이원 시인의 시집 제목은 "사랑은 탄생하라"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문장은 이상하지 않은가. '사랑'인데, 권유나 청유가 아니라 명령형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사랑'이 서술어나 목적어가 아니라 주어라는 점도 일반적이지 않고, 보조사 '은'도 심상치 않아 보인다. 시인은 왜 이처럼 무리한 문장을 썼을까? 그런데 바로 앞의 질문은 실은 이렇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이 엉뚱한 문장은 우리에게 무엇을 일깨우고 있는가라고. 짐작하건대 그것은 '사랑은'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가 스스로를 목적으로 삼는 유일무이한 주체라는 점이며, 그래서 강력한 형식의 정언명령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가 사랑을 행한다기보다는, '사랑'에 "휩싸이는 것이다." 사랑 "그것은 떠오른다. 그것은 오로지"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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