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이 주식으로 하며 살아온 오곡 중 콩 이외의 네 가지 곡물을 도정한 것은 다 쌀로 불렸습니다. 조쌀, 보리쌀, 수수쌀, 기장쌀, 벼쌀로 말이죠. 그런데 요즘은 쌀 하면 벼쌀을 주로 의미하는 것입니다. 쌀·밀·옥수수는 세계 3대 곡물입니다. 인류가 이 3대 곡식 중 어느 것을 주식으로 하느냐에 인류 문명의 향배도 바뀌리라 봅니다.
지금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밀과 옥수수는 더욱 약진하리라 봅니다. 미국의 지배적인 영향력과 세계곡물 거래량의 80% 이상을 좌지우지하는 메이저 곡물회사의 입김도 작용한 결과입니다. 밀이 세계적 대세로 자리매김해가는 현 상황 속에서 우리 국민과 인류가 무엇을 주식으로 삼는 것이 인간의 진정한 건강과 지구의 환경에 더 나은 선택이 될 것인가를 진지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만 보아도 깊은 성찰 없이 식생활 개선이란 미명하에 정책으로 추진했던 것이죠. 세계 유행에 휩쓸리다 보니 쌀을 푸대접하는 세상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밀도 참 인류에게 중요한 곡식인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유통과정과 보관에 있습니다. 밀은 음물(陰物)이어서(추위가 성할 때 파종해서 겨울을 나고 다음해 더위가 성할 때 말라 죽어 추수합니다) 기본적으로 냉한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음체질인 서양인들에게는 주식으로 적합할 수도 있습니다만 추수된 밀의 보관이 길어질수록 냉한 독성이 증가해 인간의 몸에 심대한 냉병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부족한 식량해결이 우선적인 해결 과제였기에 그간에는 이 문제가 수면 아래 있었던 것입니다. 광대한 영토에서 기계농으로 재배해 세계 곡물시장을 장악하려는 의도를 가진 자들에는 신경 쓸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죠. 특히 수년, 심지어는 수십 년 된 밀이 살충·살균·소독의 과정을 거치며 아무리 놔두어도 썩지 않는 밀가루로 재탄생하는 것이죠. 이런 것을 보면서 남이야 어찌되던 이익만 보면 된다는 자본주의의 속성에 빠진 인류의 잔인성을 봅니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 버젓이 우리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데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어졌습니다. 밀로 국민의 주식을 삼겠다면 될 수 있으면 추수한 지 1년 이내의 신선한 밀을 공급해야 합니다. 유통체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쌀은 성정이 양물(陽物)이며 온화해서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자체 내에 독성이 거의 전무하며 다른 곡물과 섞이면 다른 곡물의 장점은 배가시키고 단점은 상쇄시켜 줍니다. 예를 들어 보리는 음물이라서 오랫동안 먹으면 우리 몸에 냉한 독성이 쌓이면서 독소로 바뀌게됩니다. 하지만 쌀과 혼용해 먹으면 이 같은 현상은 없애주면서 몸이 가벼워지고 추위에 강해지는 효능은 증대시켜 줍니다. 밥을 지을 때 감자를 몇 개씩 얹으면 감자가 더욱 맛있어지는 이유 또한 같은 이치입니다. 쌀이 감자의 차가운 성질을 중화시켜 맛을 돋워주기 때문입니다. 겸양의 성정이 들어있는 쌀은 익어갈수록 머리를 수그리지만, 밀은 고개를 뻣뻣하게 쳐들고 있습니다.
빵을 먹으면 쉽게 배가 고파집니다. 그래서 밀을 주식으로 하는 민족들은 반드시 육류를 즐겨먹게 돼 있습니다. 쌀은 인류가 재배한 곡물 중 가장 밀도가 치밀해 먹었을 때 오래도록 에너지를 공급해줘 쉽게 허기지지 않습니다. 아울러 연작의 피해가 거의 없는, 하늘이 인류에 내린 선물입니다. 대자연에 순응했던 인류의 삶을 상징하는 곡물의 으뜸인 쌀을 제대로 대접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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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수(정산 鼎山)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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