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수억원 들인 공공미술품…시민도 관리기관도 무관심
서울광장 '시민의 목소리'엔 행사 물품 쌓여 시민 접근 차단


[아시아경제 이승진 기자] 시민을 위해 설치된 공공미술품이 시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공공미술품 설치 뒤 관리도 부실해 일부는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소수의 시민이 참여한 투표 결과만으로 설치 근거를 내세우는 행태는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는 지난 1일부터 한강공원 강서지구(방화대교 남단)에 설치할 ‘서울의 시작’ 작품 선정을 위한 시민투표를 시작했다. 시는 투표를 통해 4개의 후보작품 중 시민이 공감하는 작품을 선정해 설치할 예정이다. 시 투표시스템인 ‘엠보팅’에서 진행 중인 시민투표엔 5일 기준 약 600여명이 참여했다. 현재 추세로는 투표 마감일인 14일까진 약 2000여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약 1000만명인 서울시민의 전체 의견을 반영하기엔 극히 적은 숫자다.

서울시 투표시스템 '엠보팅'의 '서울의 문' 공공미술품 설치 시민투표에 부정적인 댓글들이 달렸다.

서울시 투표시스템 '엠보팅'의 '서울의 문' 공공미술품 설치 시민투표에 부정적인 댓글들이 달렸다.

AD
원본보기 아이콘

또 일부 네티즌들은 댓글을 통해 ‘왜 설치해야 하는지 설득이 필요하다’, ‘제안 작품 모두 설립취지에 맞지 않아 보인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공공미술작품 설치 전 ‘선호도’만 시민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설치 여부에 대한 찬·반 투표도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이에 시 관계자는 “시민투표에 앞서 자체적인 여론조사를 통해 시민의 70%가 설치에 찬성한다는 응답을 내놨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해당 여론조사 결과는 시민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설치비용 등 사업의 전반적인 내용에 대한 설명도 없어 ‘공공성’의 의미도 퇴색됐다. ‘서울의 시작’은 설치비용 12억원이 소요될 예정이다.

설치된 공공미술품에 대해 시민들의 무관심이 이어지고, 관리가 허술하게 이뤄지는 것도 문제다.


시는 지난 7월 서울광장에 1억5000만원을 들여 공공미술 작품 '시민의 목소리'를 설치했다. 1970~80년대에 쓰던 스피커를 청동으로 본떠 탑처럼 쌓아 올린 형태다. 시민 누구나 스피커 모양의 마이크에 하고 싶은 말을 녹음해 즉석에서 들어볼 수 있다. 하지만 2일 작품 주변엔 ‘서울김장문화축제’ 준비를 위한 물품들이 쌓여있어 시민 접근이 어려웠다.


6000여명이 참가한 시민투표에서 1위를 차지해 설치된 작품이지만 작품에 공감하지 못하는 시민도 상당수 있었다. 이날 ‘시민의 목소리’ 주변을 지나던 40대 한모씨는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 전혀 모르겠다”며 “길 한가운데 있어 주변과도 어울리지 않고, 이렇게 작품 앞에 짐을 쌓아두면 무슨 의미냐”고 혹평했다.

지난 2일 서울광장에 설치 돼 있는 '시민의 목소리' 조형물 앞에 '서울김장문화축제' 관련 물품이 쌓여 시민의 접근이 차단됐다.

지난 2일 서울광장에 설치 돼 있는 '시민의 목소리' 조형물 앞에 '서울김장문화축제' 관련 물품이 쌓여 시민의 접근이 차단됐다.

원본보기 아이콘

2013년 서울광장에 설치된 귀 모양 조형물 ‘여보세요’는 시민들의 장난에 기능을 상실했다. 시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듣겠다는 취지로 설치됐다. 작품에 설치된 녹음기 앞에서 말을 하면 시 청사 지하 시민청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녹음한 소리가 나오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시민의 욕설, 고성 등이 이어지자 시는 결국 녹음기와 스피커 모두 끌 수밖에 없었다. 해당 작품엔 설치비 1억4200만원이 들었다.

AD

현재 서울의 공공미술품은 4003개다. 이 중 245점은 시와 25개 자치구가 관리한다. 나머지는 건축비의 일정 비율을 미술작품 설치에 쓰도록 의무화한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민간에서 설치했다. 이 중 상당수 공공미술품은 허술한 관리 아래 방치 돼 존재 조차 모르는 시민이 대부분인 상황이다.


시 관계자는 "충분하진 않지만 공공미술품 설치 전 시민의견을 수집하고, 공공미술자문위원회를 통해 사전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며 "오는 19일부터 '공공미술의 설치 및 관리에 관한 조례'가 시행 될 예정으로 시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공공미술품 설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