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 북 칼럼니스트·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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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이비리그 대학 나온 남자"


며칠 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했다는 이 말이 눈에 들어왔다. "국격을 떨어뜨린다"느니 "터무니없고 품위 없는 행동"이라는 비난에 맞서 그가 그랬단다.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에 대한 평가는 필자의 몫이 아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명문대 졸업장이 교양 혹은 상식을 갖췄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그러니 미국의 명문대를 두루 일컫는 아이비리그 출신이라 해도 공부를 잘 했다는, 그러니까 점수가 높다거나 지식이 많을지는 몰라도 인간다운 인간임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 사회를 보면 절로 알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를 망치고 사회를 어지럽히는 이들은 거의가 배운 사람들이었다. 장삼이사도 능히 아는 상식에 어긋나는 일을 저질러 세인의 손가락질을 받는 이들 또한 번듯한 '간판'을 지닌 이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교양이나 상식은 무엇이고, 어디서 얻을 수 있느냐는 의문이 생길 법하다. 여기서 떠오르는 것이 10년도 더 전에 번역, 출간되어 그해 베스트셀러가 됐던 『교양』(디트리히 슈바니츠 지음, 들녘)이란 책이다. 꽤 두툼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란 부제(副題) 덕인지 제법 팔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짐작컨대 한 권으로 교양을 쌓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제목에 솔깃한 이들이 많았기 때문으로 짐작한다. 한데 지금 보면 이 책은 독일인, 잘 쳐줘야 '유럽인을 위한 간추린 상식'에 불과하다. 역사와 문학으로 이뤄진 '지식'편이 책의 3분의 2를 차지하는데 그나마 '프로이센의 재탄생' '빌헬름과 빌헬름주의' 등 우리 독자들의 교양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내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사서삼경이라든가 하는 동양의 고전에 관한 내용은 코빼기도 찾을 수 없는 것은 물론 미국 관련 서술도 쏙 빠졌으니 이 책이 말하는 '사람'은 유럽인이라 했어야 마땅하다.


'상식'을 두고서도 토를 달 만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예전에 언론사 입사시험에선 '상식'과목이 있었다. 그런데 꼭 10년 전 어느 공중파 방송의 PD 선발시험에선 당시 이름을 떨치던 아이돌 그룹을 몇 들고는 그 멤버들 수의 합을 묻는 문제가 나왔더랬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원, 아무리 PD 선발용이라 해도 그런 걸 '상식'문제라고 내다니 정말 몰상식하다'라며 속으로 혀를 찬 일이 있다. 물론 교양이나 상식의 내용, 기준은 시대에 따라 바뀌고 나라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지식'에 비중을 두고 교양과 상식을 이야기할 때 특히 그렇다. 이를 테면 석기시대엔 먹어도 좋은 것과 먹어선 안 될 것을 아는 것이 생명 유지를 위한 상식이었을 테지만 요즘은 아니다. 그보다는 IT기기를 제대로 다루는 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필요한 상식이 된 지 오래다. 예전에는 동양 고전이나 클래식 음악을 꿰고 있는 이가 교양인이었지만 요즘은 커피나 와인을 제대로 아는 편이 문화인 행세에 더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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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교양이나 상식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사람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그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라 믿고 싶다.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 또는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교양),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일반적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 따위가 포함된다'(상식)이란 사전적 정의에도 드러나는 '품위', '분별'을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든가 '옳고 그름의 잣대는 내 편이나 남의 편에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등 인간다운 삶을 위한 원칙은 예나 지금이나 품위와 분별을 위해 필요한 덕목 아닐까. 설령 그런 불변의 교양, 부동의 상식이 부와 명예를 얻는 데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ㆍ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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