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의 두 얼굴]②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신사는 왜 일본에 하나도 없을까?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여러 인생역정에서 닮은 꼴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토 히로부미의 차이점은 사후 받는 대접이다. 한국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후 근대화를 이끈 지도자로 부각되며 상당히 우상화 된 정황이 있었고, 박 전 대통령의 인기는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권 창출에도 중요한 기반이 됐다.
그러나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내에서 위인전에 분류만 될 뿐, 그를 기리는 신사 하나 없다. 일제 강점기에도 그의 신사라고 세워진 것은 오늘날 서울 남산의 신라호텔 자리에 있었던 박문사(博文寺)가 전부다. 이것도 해방 이후에 모두 철거 됐다. 오늘날에는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을 모신 신사에 쇼인의 제자 중 한사람으로 이름이 걸려있다고 한다.
사실 이토 히로부미는 당시 일본의 근대적 헌법을 입안한 법률가이자 초대 총리대신으로서 여러모로 좋은 타이틀을 가지고 있음에도 일본 우익에서조차 큰 존경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살아생전 그가 각종 성 스캔들을 일으키며 난잡한 성생활로 여러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이토 히로부미가 남긴 말 중 가장 유명한 말로 "남자는 배꼽 밑에 인격이 없다"가 전해질 정도다. 그는 수많은 후처들을 뒀고, 이중엔 조선인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유명 정치인들의 부인과 바람을 핀다는 스캔들에도 자주 휘말렸다. 또한 조선에 들어와 권번기생제도를 만든 인물로도 알려져있다.
권번기생은 청일전쟁 당시 조선으로 들어온 일본군들을 위로한다며 일본 거류민회가 만든 유곽(遊廓)에서부터 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일 전쟁 이후 이 기생집들은 한양 곳곳에 들어섰고, 초대 통감이 된 이토 히로부미는 친일파들과 자주 기생집을 찾았다고 전해진다. "취해서 미인의 무릎을 베고 눕고, 깨어서 천하의 권력을 잡는다(醉臥美人膝,醒掌天下權)"는 한시까지 직접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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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니 안그래도 천민출신으로 벼락출세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일본 내각의 귀족출신 대신들로부터 질시를 받던 그는 일본 내에서도 엄청난 비난을 받고 다녔다. 얼마나 행실이 심각했으면 일왕 메이지를 알현했을 때, 일왕이 처신을 잘하라고 야단을 쳤다는 야사도 남아있다. 일본의 정통 보수파들도 그를 매우 싫어했으며 안중근 의사의 의거로 그가 죽었을 때도 언론에서 그의 죽음을 풍자했다는 이야기들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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