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마다 편의점…한지붕 두 편의점도 수두룩
보복 출점 갈등도 심각
다만 동일 업체 내부 규제 外엔 자율안 마련 불가
1994년 '80m 이내에 서로 출점하지 말자' 합의
2000년 카르텔로 공정위 시정조치 받기도

부산의 한지붕 두 편의점

부산의 한지붕 두 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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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A편의점을 운영하던 점주 김모씨는 몇 개월 전 기존 업체와의 계약이 만료돼 B편의점으로 새 간판을 올렸다. 배분율을 비롯한 조건을 따져봤을 때 훨씬 수익성이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길 건너편 슈퍼마켓이 A편의점으로 재오픈하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수소문 해 보니 가맹본부가 운영하는 직영점이었다. 보복 출점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C편의점의 점주 최모씨는 다음달 11일 빼빼로 데이를 앞두고 판매 전략을 구상중이다. 바로 옆 건물에 신선식품과 자체브랜드(PB) 구색이 좋다고 소문난 경쟁점이 2개월 전 문을 열었기 때문. 거리로 따지면 10m도 채 되지 않는다. 최근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매출이 부진한 상황에서 지난달에는 인건비 떼고 월 150만원을 간신히 남겼다. 2개월 전 대비 30% 이상 줄어든 금액이다.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마땅히 호소할 만한 곳도 없다.

국내 편의점 수가 급증하면서 매장 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신규 상권 개발과 함께 기존 상권에도 적극 출점하는 추세가 이어지자 소송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CU, GS25, 세븐일레븐, 이마트24, 미니스톱 등 국내 5대 편의점 수는 3만8407개에 달했다. 작년 말 3만3000여개와 비교해 9개월 만에 5000여개 이상 증가한 것이다.

(사진=아시아경제 DB, ※기사와 직접적 관련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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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출점은 편의점을 찾아보기 힘든 신규 상권에서도 이뤄지고 있지만, 상당수는 기존 상권을 나눠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무리한 출점으로 갈등을 빚는 곳도 적지 않다.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 인근 '한지붕 두 편의점' 사례가 대표적이다. GS25가 자리잡은 건물 아래층에 건물주가 세븐일레븐을 신규 출점하자 기존 GS25 점주가 항의의 의미로 플래카드를 내걸면서 화제가 됐다. 뒤늦게 개점한 세븐일레븐 측이 폐점을 결정했지만, 갈등은 수 개월이 지속됐다.

현행법상 편의점 근접 출점을 제재할 법적 근거는 없다. 250m 거리제한을 둔 공정거래위원회의 모범거래기준이 2012년 만들어졌지만 당시 강제성이 없었고, 단순 거리제한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 끝에 2015년 폐지됐다.


각 편의점들은 자율적으로 규정을 만들어 통상 250m 내에 동일 브랜드 간판이 올라가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는 않는다. 한 점주는 2012년 기존 계약을 본사가 어기고 기준거리 내에 신규 가맹점을 출점시켰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고 부산지방법원에 소송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은 거리 측정 기준이 달라 사실관계 확인이 어렵다면서도 법원은 "계약해지 사유가 아니다"라고 기각했다. 최단거리 보행 동선을 기준으로는 250m 미만이지만, 큰길을 기준으로 재면 250m를 살짝 웃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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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는 현행법 상 공동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수 없는 상황이다. 1994년 사장단 협의를 통해 다른 브랜드끼리라도 "80m 이내에는 출점하지 않는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당시에도 구속력은 없었지만, 편의점 수가 많지 않아 대체로 지켜졌다. 그러나 2000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합의를 '부당한 공동행위', 이른바 카르텔로 규정해 시정조치 명령을 내리면서 백지화 됐다.


업계 관계자는 "점포 간 거리와 근접 출점에 따른 매출 감소는 각 본사에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문제"라면서 "정기적인 소통과 설명회, 단체 행사 등을 마련해 가급적 점주들의 이익을 최대화 훼손시키지 않는 성장전략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동일 브랜드 뿐 아니라 타 브랜드가 근처에 오픈하는 것 역시 위협적인 것은 마찬가지"라면서 "공동의 논의가 필요하지만, 현재로서는 카르텔로 지적받을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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