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돼지머리 집 앞에서 전생을 보다/함태숙
어쩌면 삼천대천세계 나아갈 적에
펄펄 끓는 물에 몸 삶기 우는 것도
업장 녹일 큰 벌을 받듯
새끼 발길질로 묵직하던 아랫배와
헐릴 듯 물리던 젖꼭지와
핏물 배인 겹겹의 살점들
봉다리 봉다리 들려 보내고
다만 한 미소를 깨우친
돼지머리, 저 불두
지장경 지장경
솥물 끓는 소리를 내며 꿈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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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업고 안고 걸리고
저잣거리를 지나는
이 아름다운 내세를
■재래시장을 걷다 보면 어느 한편에서 씨익 웃고 있는 돼지머리를 만나곤 한다. 고놈 참 복스럽게 생겼다 싶어 들여다보고 있자면 문득 팔다리도 몸통도 다 내주고 뭐가 저리 즐거울까 그런 생각이 들어 살짝 안쓰럽기도 하다. 이 시를 쓴 시인도 그런 마음이 들었었나 보다. 그런데 시인은 그 돼지머리를 두고 "불두"라고 적는다. 저 한 단어로 시는 순간 풍격(風格)을 달리하게 된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중생을 모두 구제하겠다는 일념으로 지옥으로 몸소 들어간 부처이고, 지장경은 지장보살의 그 서원(誓願)을 적은 불경이다. 어쨌건 돼지에겐 얼마나 간절했을까. "아이를 업고 안고 걸리고" "저잣거리를 지나는" 이 보잘것없는, 그러나 "이 아름다운 내세"가 말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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