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무 거나 잘 먹습니다. 별나게 좋아하는 것도, 특별히 싫어하는 것도 없습니다. 솥에서 나온 것이면, 가리지 않고 입으로 가져갑니다. 상 위에 오른 것이면 맛을 따지지 않습니다. 제 무차별의 식성 앞에서 세상 모든 음식은 평등합니다. 종교나 신념이 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혀끝이 좀 무딜 뿐입니다.
둔감한 미각을 핑계로, 식당 선택과 메뉴 선정은 주로 옆 사람에게 떠넘깁니다. "전 아무 거나 좋습니다. 드시고 싶은 걸로 하시지요. 저는 돼지 혓바닥입니다." 한번은 어떤 어른께서 제 표현에 즉각, 토를 다셨습니다. "하하. 돼지 혓바닥? 기런(그런) 사람을 우리 고향에선 '약방집 맷돌'이라구 기래(그래)."
"무슨 뜻인지요?" "생각해보라우. 한약방 맷돌에 들어가지 않는 거이 무어 있가서? 세상에 약재(藥材) 아닌 거이 어디 있간?" 평안도 말씨를 흉내내보았습니다만, 비슷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평양 출신의 이 어른 말씀이 하도 우스워서 혼자도 곧잘 웃습니다.
그 이후로, 제 식성을 소개할 때마다 그 비유를 곧잘 가져다 씁니다. "저는 약방집 맷돌입니다." 하지만, 맷돌의 입이라고 모든 것이 다 똑같이 달고 맛있을까요? 드러내놓지 않아서 그렇지, 특히 반기는 음식 한두 가지가 왜 없겠습니까. 누가 제게 그런 것을 물으면 못이기는 체, 이렇게 답합니다. "홍어."
이것만큼 '호오(好惡)'가 분명히 갈리는 음식도 드물 것입니다. 애정과 혐오가 극단적이지요. '홍어' 소리만 나와도, 입맛을 다시는 사람과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 저는 침을 꼴깍 삼키는 쪽입니다. 한참 잊고 지내다가도 일단 생각이 나면, 참기가 어렵습니다. 즉시 찾아 나서야지요. 일종의 '중독'입니다.
순천식당은 그런 날에 달려오는 곳입니다. '순천'은 꼬막이나 짱뚱어가 먼저 떠오르는 지명이지만, 이 집은 그것들 못지않게 홍어가 좋습니다. '애탕'을 특히 잘 합니다. 알다시피, 그것은 삭힌 홍어와 홍어 내장을 넣고 끓인 된장국입니다. 무, 콩나물, 마늘, 대파가 어우러지고 미나리가 곁들여지지요.
해질 녘이면, 그것과 막걸리를 마십니다. 날이 새면 그것에다 밥을 먹지요. 홍어와 탁주가 보통 궁합입니까. "목포지방에서는 홍어를 삭혀서 막걸리 안주로 먹는다… 홍어국은 주기(酒氣)를 없애는 데에도 효과가 있다." 말하자면 홍어는, 술도 권하고 약도 줍니다. 정약전 선생 '자산어보(玆山魚譜)'에 나오는 이야기지요.
남도 출신도 아닌 제가 언제부터, 어쩌다가 홍어에 인이 박혔을까요. 남정네들이 즐기는 어떤 음식처럼, 선배나 어른들께 얼결에 배운 기억도 없습니다. 군대생활에서 익힌 것도 아닙니다. 술꾼이니, 술자리에서 친숙해졌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술꾼들이라고 모두가 홍어를 좋아하지는 않으니까요.
수수께끼는 하나 더 있습니다. 홍어 냄새도 맡지 못하던 아내가, 이즘엔 제 손으로 사 들고 오기도 하고, 산지(産地)에 직접 주문까지 합니다. 물론, 같이 먹자면 여전히 손사래를 칩니다. 자신이 차려놓은 술상인데, 코를 싸쥐고 저만치 물러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알 수 없는 매력이 있음은 진작 깨달은 눈치입니다.
전라도로 시집간 서울처녀들 얘기가 생각납니다. 홍어를 보고는 '이런 걸 어떻게 먹느냐'며 질색을 한다지요. 시집 식구들을 외계인 쯤으로 여기며 눈을 흘긴답니다. 그러나 삼년만 지나면 딴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남의 집 큰일 상차림을 보고, 이렇게 흉을 볼 정도가 된다지요. "무슨 잔치에 홍어가 없어요?"
가만가만 짚어보면, 제 '홍어 학습'의 경로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을 어찌 미워하겠습니까. 고백하건대, 제가 다닌 대학 근처에 유명한 '홍탁집'이 있었지요. 간판에 '사십년 전통'을 내세우는 집이었습니다. 제 벗들과 가까운 선후배들은 대개 그 집에 있었습니다.
제 혀는 '그때 그 유혹'에 빠져서 이제껏 헤어나질 못하는 것입니다. 저뿐만이 아닙니다. 그 시절, 그 자리의 사람들 모두 같은 증상을 보입니다. 문병을 가서 선배에게 이렇게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형, 퇴원하면 뭐 먹고 싶어?" 어서 털고 일어나길 바라는 희망의 질문이었지요. 답은 간단했습니다. "홍어."
그 무렵 미국에 연구교수로 가 있던 친구와 국제전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참 안부를 주고받다 물었지요. "귀국하면 뭐가 제일 먹고 싶어?" 세상에! 병상의 선배와 똑같은 답이 날아왔습니다. "홍어." 짜장면도 김치찌개도 아니고, 냉면도 삼겹살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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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비까지 추적거려서, '애탕' 생각이 더욱 간절합니다. 그런데, 이를 어쩌지요. 순천식당이 문을 닫았습니다. 정기휴일도 아니고, 여름휴가를 떠난 것도 아닙니다. 아주 닫았습니다. 문득, 순천만 갈대밭이 떠오릅니다. 흑산도 풍경도 삼삼합니다. 남도 밥상이 그립고, 흑산도 홍어의 안부가 궁금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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