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cene One Story] 본드, 제임스 본드
영화 007시리즈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는 숀 코네리, 조지 라젠비, 로저 무어, 티머시 돌턴, 피어스 브로스넌, 대니얼 크레이그 등 여섯 명이다. 이 중에 영국 배우 로저 무어가 역대 최고의 007로 꼽힌다. 무엇보다 시리즈의 원작자인 이언 플레밍이 제임스 본드 역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라고 평가했으니까.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 품격과 유머를 겸비한 말솜씨, 사람(특히 미녀)을 꿰뚫어보는 듯 매혹적인 눈동자, 군인답게 균형 잡히고 절도 있는 행동 등 제임스 본드 역을 맡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모두 갖춘 배우로 무어만한 사나이가 없다.
007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몇 가지 있다. 우선 익숙한 테마곡. 우리의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다. 그 다음은 '총열 시퀀스(Gunbarrel Sequences)'로서 총구멍 저편, 스크린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걷던 본드가 홱 돌아서며 권총을 발사하는 장면이다. 화면 가득 붉은 피가 주르륵 흐르면서 총구멍이 화면 바닥으로 내려오면 이제 시작이다.
무어는 1973년 '죽느냐 사느냐'로 007 시리즈에 데뷔한다. 총열 시퀀스에서 그는 007 중에 처음으로 중절모를 쓰지 않고 나온다. 그 전에는 숀 코네리와 그의 대역 밥 시몬스, 조지 라젠비 모두 중절모를 썼다. 무어가 벗은 중절모를 다시 쓴 007은 없다. 또한 무어는 오른손에 든 권총을 왼손으로 지지하는 두 손 사격을 한다. 무어가 007을 맡았을 때 나이는 마흔다섯 살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그래도 007이 사용하는 월터 PPK는 600g 미만이어서 어지간한 남성이 두 손으로 들어야 할 만큼 무겁지는 않다.
영화가 진짜로 시작되는 곳은 임무를 전달받은 본드가 현장에 뛰어들어 자신을 소개할 때다. "본드, 제임스 본드(Bond, James Bond)." 이 장면에서 무어만큼 폼이 나는 배우도 다시 없을 것이다. 그는 완벽한 귀족영어(King's English)를 구사했다고 한다. 이제 무어의 목소리는 필름에서만 들을 수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한국시간) 스위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베이비붐 세대의 007,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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