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6명의 상왕중 자의에 의해 양위한 임금은 태조 이성계와 정종(이방과), 태종(이방원), 세조(수양대군)다. 태조 이성계는 1398년 자식간의 피비린내 나는 다툼에 회의를 느끼고 아들 정종에게 선위했다.
타의에 의해 상왕이 된 임금은 단종과 고종이다. 단종은 불과 열한 살때 왕이 됐다. 어린 왕은 숙부 수양대군의 먹잇감이 됐다. 수양대군에게 양위 후 단종은 죽임을 당했다. 조선 26대 왕 고종은 일제에 의해 상왕이 된 인물이다. 고종은 양위라는 표현보다 '쫓겨났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다. 비운의 왕이다.
상왕에도 '급'이 있다. 태종과 세조가 대표적이다. 태종과 세조는 스스로 왕좌에서 내려왔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상왕이다. 태종과 세조는 살생, 특히 피붙이를 재물로 왕이 된 인물들이다. 1∼2차 왕자의 난을 통해 형제들을 도륙한 태종은 형 정종으로부터 왕권을 넘겨받았다. 그는 이후 자신의 아들 세종에게 양위했다. 상왕이 된 이후에도 그는 국정을 쥐락펴락했다. 자신의 정통성 결여가 혹여 세종의 왕권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상왕이라는 단어는 좋은 뜻이 될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선 권력욕을 놓지 못한 탐욕스런 사람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금융권에서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전 회장의 고문자리와 고문료가 논란이 되고 있다. 조용병 회장에게 권한을 넘겼음에도 불구, 한 전 회장은 고문직을 맡았다. 고문료는 2년간 월 2000만원. 당초에는 3년간 월 3000만원이었다. 한 회장이 회장 재임기간중 받은 보수 총액은 90억원이 넘는다.
더 큰 문제는 상근직이라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금융권 일각에서 한 전 회장을 상왕이라고 소곤소곤한다. 뒷방 실세라는 의미다. 심지어 조 회장이 '상왕과 태상왕(라응찬) 두 분을 모셔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신한금융지주는 지난 2010년 회장(라응찬)과 사장(신상훈)간 골육상쟁의 아픔을 겪은 금융그룹이다. 당시 신한금융지주 조직은 둘로 쪼개졌다. 고소와 고발이 난무했다.
한 전 회장은 이 과정에서 회장직에 올랐다. 조직의 상처를 봉합하고, 통합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한 전 회장은 그 임무를 충실히 이행했고, 권력까지 성공적으로 이양했다. 여기까지다. 고문보다 원로로 남아야 한다. 그것이 순리다. 상왕이라는 말이 얼토당토 않다고 하시겠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그렇지 않다.
조 회장은 1957년생이다. 그도 환갑이다. 상왕의 조언이 필요한 어린 회장이 아니다.
한 전 회장이 전직 회장을 코스프레할 이유가 없다. 태조 이성계처럼 함흥으로 떠나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 고문료는 뜻깊은 일에 사용하시는 게 좋겠다.
조영신 기자 as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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