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회사 재직 '흑역사' 숨기는 '깜깜이' 공시…당국 "내년부터 중점점검"
[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기업이 사업보고서를 작성할 때 과거 부실화된 기업에서 일했던 임원의 이력을 반드시 기재토록 한 공시 규정이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종의 ‘흑역사’ 숨기기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뒤늦게 내년부터 중점점검하기로 했다.
19일 경제개혁연대의 ‘사업보고서 임원 주요 경력 부실 공시 현황’ 보고서를 보면, 과거 기업 부실에 책임이 있는 임원의 관련 정보를 적극 제공하라는 의미에서 도입된 이 규정을 지키는 회사는 없으며 감시감독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옛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가 2006년 참여연대에서 분화해 설립된 경제전문단체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가 센터 시절부터 소장을 맡아왔다.
금융감독원의 기업공시작성서식과 작성지침에는 ‘만약 현재 임원이 과거 임원으로 재직했던(그 사건이 발생하기 전 1년 이내 재임이었던 경우 포함) 회사의 파산, 회생, 또는 채권금융기관협의회와의 경영정상화 이행약정 체결이 있은 경우 그 사실과 내용을 포함해 기재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경제개혁연대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파산, 회생, 경영정상화 이행약정 체결 회사 8곳에서 재직했던 임원 5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다른 회사 사업보고서에 이를 기재한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지난해 9월 법원의 회생절차 개시 결정이 내려진 한진해운의 대표이사였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한진칼, 한진, 대한항공 사업보고서 주요 경력에 한진그룹 회장, 대한항공 회장 등만 기재했다.
금호산업은 2010년에 경영정상화 이행약정을 체결했는데 지배주주였던 박삼구 회장의 경우 2014년 금호타이어, 아시아나항공의 사업보고서 주요 경력에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만 기재했다. 금호산업 사내이사였던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역시 마찬가지다.
효성그룹 소속 진흥기업은 2011년 경영정상화 이행약정을 맺었는데, 지배주주 일가인 조현준 이사는 진흥기업 이사로 재직했으면서도 효성과 효성아이티엑스의 사업보고서에 이 사실을 아예 기재하지 않았다.
이수정 경제개혁연대 연구원은 “금융감독당국은 모든 상장법인들을 대상으로 사업보고서에서 임원의 주요 경력 공시가 지침에 맞게 기재됐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하며 미진한 부분에 대해 시정 조치해야 한다”고 했다.
금융당국은 지금까지는 이에 대해 제대로 점검하지 못했으나 내년에 나오는 사업보고서부터 중점점검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사업보고서가 나오는 4월이면 매년 직원들이 한달간 매달려 위반 사항들을 점검하는데 워낙 그 수와 양이 많아서 10개가량의 중점점검 항목들을 정해서 하게 된다”며 “임원의 부실회사 재직 이력 항목은 그동안 포함치 못했는데 내년에는 반드시 중점점검에 포함해 면밀히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