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 간호사에서 한국의 나이팅게일로
'올해의 간호인'에 선정된 김정란 사회복지재단 한국디아코니아자매회 상무이사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한 사람에게 특별한 경험은 인생관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올해의 간호인'에 이름을 올린 김정란 사회복지재단 한국디아코니아자매회 상무이사(70)에게는 특히 그렇다. 김 상무는 1970년대 겪었던 비교되는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저에게는 1970년의 잊을 수 없는 두 가지 경험이 있었습니다. 1970년부터 약 6년 동안 독일 함부르크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어요. 독일에 가기 전에는 양호교사를 했습니다. 당시 섬마을 아이들의 집을 방문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항부르크병원에서 환자들은 정말 좋은 시설에서 마치 휴양온 것처럼 지냈거든요. 반면 양호교사로서 제가 본 1970년대 우리나라 풍경은 배고프고, 아파도 치료를 제대로 못 받는 그야말로 최악의 시간이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0대 중반이었다. 김정란 상무는 그때를 두고 "세상의 '극과 극'을 봤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경험은 그를 낮고 힘없는 이들이 사는 곳으로 이끌었다. 6년 동안의 독일 간호사 생활을 마치고 김 씨는 귀국했다. 귀국 후 개신교여성수도공동체인 한국디아코니아자매회에 입회해 수련기간을 마치고 1981년부터 1990년 9월까지 결핵환자를 대상으로 '한산촌 결핵요양소'를 무료로 운영했다. 2004년 12월까지 결핵내성균이 생겨 오갈 때 없는 환자를 대상으로 '자활촌'을 운영하며 봉사 활동을 이어갔다.
"독일 가기 전 양호교사로 있었을 때 섬 지역 아이들의 집을 많이 방문했습니다. 장기 결석하는 아이들 집을 찾아가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의 이 같은 경험은 1983년부터 1989년까지 무의촌인 전라남도 무안군 운남면 성내 보건진료소 소장으로 근무하는 계기가 됐다.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지역의료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마을건강어머니회를 조직하고 농촌지역 최초로 신용협동조합과 어린이집, 공부방 등을 설립하고 복지회관을 준공하는 등 지역의료사업을 펼쳤다.
1991년부터 지금까지 목포시 달성동에 거주하는 영세가정, 소년소녀가장, 독거노인, 다문화가정, 북한이탈주민 등 도시빈민을 대상으로 복지사업을 펼치고 있다. 김 상무는 "1970년과 지금을 비교하면 말로 설명하기 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이 바뀌었다"며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소외된 이웃이 많은데 이들을 위한 작은 보탬이 되는 일을 계속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상무는 1996년 3월부터 1998년 2월까지 전라남도간호사회 회장직을 맡아 수행하기도 했다. 김 상무는 "앞으로 목포시와 무안군을 중심으로 조손, 학부모 가정은 물론 장애, 다문화 가정 등을 대상으로 직접 방문해 어려움을 파악하고 이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올해의 간호인상'은 대한간호협회(회장 김옥수)가 선정하는 상으로 간호 전문직 역할 확대와 소외계층 보건복지사업에 헌신한 이를 뽑아 수상한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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