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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 헤비메탈 같은 비 / 진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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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원하는지
 하늘의 기타 줄이 끊어졌는지
 머리를 치렁치렁 기른 빗줄기들이
 새벽부터 내 창문을 두드렸다
 헌데, 찰나 나의 망상은 최치원의 한시로 달려갔던 거다
 이런 것이 문화의 힘이고, 전통의 생명력일까
 내가 빗줄기를 헤비메탈 같다고 느끼는 사이
 내 마음속에선
 창밖에 삼경의 비 내리는데
 등 앞엔 만 리의 마음 달리는구나
 라는 시구가 떠오른 것이다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나의 무식과 무교양을 한참 동안이나 탓해 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전국이
 장마권에 들었다는 새벽 라디오의 기상예보조차
 내겐 이상스레 들리는 거였다
 전국이라니 어느 나라의??
 당나라, 아니면 대식국?

  @
 천축국, 나란타 대학 한 모퉁이엔
 향수를 이기지 못한 서라벌의 승려가 아직도 누워 있다
 <메탈리카> 같은 빗줄기 속에서
 나는 그를 기억한다

 
[오후 한詩] 헤비메탈 같은 비 / 진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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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후에 단 한 권의 시집으로 신화가 된 시인들이 있다. 김소월이 그렇고 기형도가 그렇다. 나는 그 곁에 진이정을 꼭 적고 싶다. 진이정은 1993년 우리 나이로 서른다섯에 세상을 달리한 시인이다. 그리고 이 시가 실린 그의 유고 시집은 1994년에 발간되었다. 흔히들 감각이란 원래 있던 것이고 시인은 그것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나는 거기에 덧입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시인은 그전까지 없었던 감각을 발명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자면 진이정이 없었다면 "헤비메탈 같은 비"는, "<메탈리카> 같은 빗줄기"는, 비에 대한 이런 감각은 그전에도 그랬듯 그 이후로도 없었을 것이다. 김소월이 없었다면 이별에 대한 정한이 그토록 참혹하고 또한 그래서 눈부신지 몰랐을 것처럼 말이다. 이전에는 몰랐고 실은 없었던 새로운 감각을 자신의 몸에다 찬찬히 새기는 것, 이것이 시를 곁에 두고 읽어야 하는 여러 이유들 가운데 핵심적인 하나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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