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표명한 민정수석…시야에서 사라진 정무수석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정작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지나친 '장고'와 '고집', '오판'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무 기능 부재는 민정수석 사표 제출 이후 진행상황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한광옥 청와대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진은 전날 회의를 거쳐 최 수석 사표를 반려해줄 것을 박 대통령에게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선뜻 수용하지 않자 참모진은 같은 날 오후 다시 모여 이 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였고 결국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25일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최 수석의 사표반려 여부와 관련해 "인사에 관련된 것은 대통령의 결심사항"이라며 대통령의 결단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 수석은 통화에서 "사표수리가 될 때까지는 정상출근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출근은 하지만 언젠가는 사의를 받아들이지 않겠냐는 의미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은 검찰의 대면조사 요구를 계속 거부하며 '고집'을 부리고 있다. 검찰은 수사 방향을 박 대통령 뇌물의혹 규명으로 완전히 전환한 분위기다. 전날 롯데와 SK 등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한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에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뇌물 혐의를 적시했다. 검찰은 또 지난 23일 박 대통령에게 '29일까지 조사에 응해달라'고 최후통첩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청와대와 박 대통령 변호를 맡은 유영하 변호사는 이에 대한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강제조사 카드를 꺼내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지만 묵묵부답이다.
탄핵정국에 대해서도 청와대가 오판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야당 171석과 함께 여당에서 연판장을 돌려 40명 이상의 의원이 서명해 탄핵안 가결 정족수를 훌쩍 넘겼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청와대는 조용하다. 이 때문에 청와대가 탄핵국면에서 제대로 대응할 의지는 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 대변인은 탄핵 대응 여부와 관련해 "국회에서 진행 중인 상황에서 특별히 말씀드릴 것은 없다"고만 말했다. 전날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탄핵을 주도하고 정족수를 채웠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아직 그 단계까지 있다고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여권에서는 사실상 탄핵에 대해 더 이상 청와대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검찰 중간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차라리 탄핵하라"는 취지의 입장을 낸 만큼 이를 막기 위해 나서기가 부담스럽다는 이유 때문이다. 허 수석도 최근에는 국회에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달 초 임명됐을 때만해도 영수회담 성사를 위해 여야를 분주히 오갔지만 박 대통령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회동이 불발된 이후에는 조용하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탄핵 이후를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정무라인 가동이 중단되면서 탄핵 후 대통령 대행을 맡게 되는 황교안 국무총리에 힘을 실어주자는 것이다. 한 비서실장이 황 총리에게 이미 탄핵 이후 챙길 정책을 챙겨줬다는 얘기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버티기'를 유지하면서 국회의 탄핵논의를 지켜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정 대변인은 정책을 챙겨줬다는 지적에 대해 "확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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