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2주간 해외 출장을 간다고 하면 유부남들의 반응은 노소를 가리지 않고 한결같다. 좋겠다. 부럽다. 뭐 이런 식이다. '올레'를 대신 외쳐주는 사람도 있다. 다 큰 어른들이 설마 아내가 잠시 없다고 해방이라도 된 듯 자유를 만끽하고, 그 틈을 타 그동안 하지 못했던 너무나 재밌는 일들을 할 수 있다고 여겨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내와 잠시 떨어져 있는 것은 서로를 더 간절히 그리워하고 생각하는 시간이어서 부부 사이의 사랑과 정이 더욱 돈독해질 수 있는 기회이기에 그러는 것이 분명하다고 이곳에 힘줘 적는다. 설혹 잠시라도 철없이 들뜬 마음이 들더라도 조신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장도에 오르는 아내 생각만 해야 한다. 그런 마음가짐은 슬며시 내비쳐도 좋다. 지난 금요일 '불금'도 마다하고 집에서 손수 따뜻한 밥 한 끼 해 먹이고 싶다고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특별할 필요는 없다. '집밥'은 본디 수수한 것이니까. 밥을 짓고 청국장을 끓여 어머니표 김치 3종과 함께 차렸다. 좀 아쉬워 계란말이도 곁들였다. 주연은 청국장인 셈인데 비록 시장에서 산 청국장에 두부만 넣고 끓인 것이지만 멸치로 기본 국물을 내는 정성은 보탰다. 청국장은 이렇게 뚝딱 끓여도 뭔가 깊은 맛이 난다. 아마 청국장 특유의 냄새 때문일 것이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이에 대해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향이 있다"고 했다. 인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세월 이런 발효음식을 먹어왔다는 점에서 원초적이라고 할 만하다는 것이다. 청국장의 향이 자극하는 원초적인 본능이 뭔지는 먹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번 경우에는 뭐랄까,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랄까, 굳이 강조해 본다.
잘 띄운 청국장을 끓이면 달고 구수한 맛이 난다고 한다. 시판 청국장을 집에서 끓여서는 이런 맛을 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동작구 사당동에 전라남도의 지명을 옥호로 사용하는 식당이 있는데 이곳의 청국장은 잘 띄운 모양인지 달고 구수하다. 그런데 이 집에는 청국장과 함께 먹으면 좋은 숨겨진 메뉴가 있다. 차림표에는 없다. 단골인 것처럼 익숙하게 그냥 "곡주 주세요"하면 주인장이 "한 되 드릴까"라고 묻는다. 한 되면 1.8리터다. 술을 마실 양이면 한 되를 시켜야겠지만 청국장에 곁들이는 반주라면 둘이서 반 되가 적당하다. 주전자에 나오는 곡주는 이 집에서 직접 담근 술이다. 잘 지은 밥과 깊은 맛내는 남도 반찬 등을 볼 미어지게 입에 넣은 뒤 한참 씹다 청국장 국물 한 숟갈 떠 넣으면 예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향이 가득 퍼진다. 이 때 곡주를 한 잔 따라 털어 넣으면 절묘하게 입 안을 정리하며 쿰쿰한 냄새가 아니라 구수한 향만 남는다. 청국장과 이 곡주는 뭐랄까 환상의 '마리아주(Mariage)'를 보여준다. 이 청국장과 곡주를 함께 먹으면서 이렇게 서로의 장점을 한껏 끌어올리는 음식과 술의 조화 같은 것이 바로 부부 관계 아닐까 감히 생각해봤다. 마리아주는 프랑스어로 결혼이니 그들도 아마 비슷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 토요일 아내가 출국한 뒤 오후에 종로3가에서 시작해 종각, 광화문을 거쳐 시청까지 걸었다. 걸으면서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청소년들의 긴 행진을 봤다. 그리고 "저들이 희망이다"고 얘기하는 한 중년 남성의 말을 스쳐 가며 들었다. 비행기를 타고 있을 아내를 떠올리며 촛불을 들고 속속 모여드는 사람들 가운데 홀로 서 있자니 공기마저 자유로운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꾹 눌러왔던 말이 절로 나왔다. '올레!' 오해는 마시길. 스페인어로는 '힘내라, 잘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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