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20일 최씨, 청와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강요, 강요미수 등 혐의로,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을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최씨는 사기미수 혐의 등도 받는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의 변호를 맡은 유영하 변호사는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고 “(검찰 수사결과는)상상과 추측을 거듭한 뒤 그에 근거하여 자신들이 바라는 환상의 집을 지은 것으로, 한 줄기 바람에도 허물어지고 말 그야말로 사상누각(沙上樓閣)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검찰 수사의 공정성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 앞으로 검찰의 직접 조사 협조요청에 일체 응하지 않고 중립적인 특검의 수사에 대비하겠다”고 반발했다.
박 대통령은 작년 7월 안 전 수석을 움직여 삼성 등 7개 그룹과 독대 일정을 잡는 등 강제모금 운을 띄운 뒤, 최씨에게 미르재단 운영을 부탁한 것으로 조사됐다. 청와대 참모들은 두 사람을 오가는 ‘메신저’였다. 최씨가 미르재단 이름과 임원진을 정하면, 박 대통령이 그 실행을 청와대 참모들에게 지시해 재계와 접촉했다. 이미 갔던 길은 쉽다. K스포츠재단도 미르재단과 마찬가지 전철을 밟아 설립됐다. 검찰은 두 재단의 설립상 하자를 공소장에 적시했다.
최씨가 재단 및 본인과 측근 업체를 통해 이권을 노리거나, 국정기밀을 받아 볼 때마다 박 대통령은 참모진에게 이를 거들도록 지시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안 전 수석 등은 최씨 측이 흡족해 할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협박도 서슴지 않았고, 대통령 지시로 관·재계 인사들과 최씨 측근 사이에 다리를 놓기도 했다. 의혹이 본격화되자 휴대전화 폐기·교체 및 각종 기록 삭제, 허위진술 요구 등 청와대 내 조직적인 증거인멸 정황도 포착됐다.
박 대통령 측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그간 대국민 사과·담화를 통해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 “선의의 도움을 주셨던 기업인 여러분”,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 등의 표현으로 압축되는 혐의 전반을 부인하는 태도의 재탕이다.
국정기밀 유출, 비선실세 이권개입 지원 내지 재계와의 뒷거래 의혹 관련 재단 설립·운영은 국정수행의 일환일 뿐 이를 사유화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거나 최씨 등 측근의 일탈이라는 취지다. 연설문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의견을 구했을 뿐 국가 기밀이라 할 법한 내용은 새어나간 적이 없다고도 주장했다.
박 대통령 본인은 변호인에게 ‘재임 기간 내내 국민을 위해 희생하면서 내 모든 것을 바친다는 각오로 한 치 사심 없이 살아왔다. 맹세코 대한민국의 발전과 국민들의 삶이 나아지도록 하려는 순수한 마음에서 재단 설립을 추진한 것이고 퇴임 후나 개인의 이권을 고려했다면 천벌을 받을 일이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KT, 그랜드코리아레저(GKL) 등에 대해 최씨 측이 인사·이권 개입 등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직접 청와대 플레이그라운드, 더블루K 등 최씨 측근 업체·인사를 거명하고 연락을 주선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 대통령 측은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유능한 인물을 추천받고, 중소기업의 애로를 듣는 것은 흔한 일이고 민원비서관을 따로 둔 것과 같은 취지”라며 “대통령은 직무 수행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나 기업을 도와주기 위해 사심을 갖고, 관계 비서관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부당한 업무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주 수차례 검찰 출석 요청에 모두 불응하고 최씨 등의 구속만기일을 감안할 때 물리적으로 조사가 불가능한 시점에 출석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었다. 이와 관련 유 변호사는 거듭 “조사에 협조하겠다고 하였지 거부한 적은 없다”고 강조했으나, 사실상 다음달께 본격화될 특별검사 수사에만 응할 입장을 내놔 검찰 수사를 피해간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한편 박 대통령 측은 검찰 수사결과에 급박하게 대응하는 과정에서 실제 검찰이 공소장에 적시하지 않은 ‘제3자뇌물취득죄’를 거론하거나,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직권남용·강요 혐의 피해업체명(GKL→GAL)을 잘못 기재하는 등 입장문에 오류를 담았다. 이와 관련 유 변호사는 “초안을 잡을 때 검찰이 공소장에 포함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재한 것을 미처 삭제하지 못한 것”이라며 촉박한 시간에 작성하느라 빚어진 실수라고 해명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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