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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청송 고갯길에서 최순실을 떠올린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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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송은 산간오지마을이다. 산이 전체 면적의 80%에 이른다. 철도나 고속도로가 전국을 거미줄처럼 연결하지만 이곳은 아직이다. 육지 속의 섬이나 다름없다. 가는 길은 '첩첩산중(疊疊山中)이란 말을 이럴 때 사용하는 것이구나'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보석같은 자랑거리도 많다. 우선 우리나라의 대표 청정 지역이다. 그만큼 숲이 짙고 물이 맑다. 6500만년 전 화산 폭발로 생긴 주왕산과 주산지는 명소중 명소다. 세종대왕의 비인 소헌왕후를 배출한 청송 심씨와 퇴계 이황 집안의 진성 이씨가 본관을 쓰는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이런 청송이 알려진 것은 영화 때문이다. 이두용 감독의 '청송으로 가는 길(1990년)'과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년)이 그것이다.
'청송교도소'를 다룬 '청송으로 가는 길'은 일생을 교도소에서 보낸 한 노인의 쓸쓸한 말로를 그린 작품이다. 수감자들은 빛과 어둠의 또 다른 세계에 격리되어 동물적인 생존 본능을 충족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잘못에 대한 후회도 하지만 잠시 뿐 잔인한 폭행과 몰염치한 일들을 자행한다.

출소 후 다시 염소를 훔친 노인은 청송보호감호소로 이송될 처지에 놓인다. 노인은 "그 무서운 곳으로 가기 싫다"고 버티다가 다른 교도소에서 생을 마감한다. 주검 옆에는 검은 고무신 한 켤레와 쓰다 남은 두루마리 화장지만 남았다. 많이 갖겠다고 아귀다툼 하며 살아본들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당시 이 영화를 두고 청송 사람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지역 이미지를 망친다며 영화 제목을 바꿔달라는 것. 그러나 영화 제목은 바뀌지 않았다.

청송에는 전국적으로 유례없는 4개의 교도소가 있다. 1980년 신군부가 사회정화라는 구실로 보호감호소 3곳을, 1993년에는 청송 제2교도소를 신설했다.
국내 유일의 보호감호소인 만큼 희대의 범죄자들이 들락거렸다. 언론에도 자주 조명되면서 '악명 높은 교도소가 있는 곳'으로 각인됐다.

'청송교도소'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청송을 옭아맨 굴레였다. 흉악범들의 수용소가 있는 곳이라는 오명은 산골마을이 감당하기는 버거운 짐이었다.

이 때문에 '청송'이 고향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청송교도소'를 먼저 떠올렸다. 심지어는 출소자로 오해도 했으니 출향인들이 받는 피해는 오죽했을까. 무겁던 멍에는 지난 2010년에 한결 가벼워졌다. 교도소 명칭에서 '청송'이 빠지고 '경북 북부'로 대체됐다. 보호감호시설이 들어선 지 30년 만이었다.

지난 주 청송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읍내로 드는 삼자현 고갯길은 굽이굽이 어찌나 험하고 어지럽던지.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어지러운 나라꼴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희대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국정은 마비됐고 나라꼴은 말이 아니다. 눈만 뜨면 속속 드러나는 비리에 국민들의 탄식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100만명 촛불민심이 '이게 나라냐'고 목청껏 외쳐도 돌아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뿐이다. 대통령은 불 밝힌 민심에도 마이동풍(馬耳東風)격으로 관심도 없는 분위기다.

고갯길에서 희대의 국정농단녀 최순실과 한 동안 기억에서 사라졌던 멍에가 오버랩 됐다. 이 길을 내려서면 악명(?)높은 '경북 북부(청송) 교도소'가 코앞이다.

조용준 사진부장ㆍ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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