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저씨, 시대의 변화 반영 vs 일부 부적응자 탓?
-"좋은 아저씨도 많지만 무례한 손님은 대부분 아저씨예요"
-젊은 사람 중심으로 아저씨 혐오 증세 표출하는 경우 늘어
-온라인 상에는 '개저씨 경험담', '개저씨 눈빛 퇴치법' 등 공유
-전문가 의견은 분분…구시대적 발상 소유자 vs '마녀사냥'으로 피해
-혐오를 줄이려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이해심 높여야"
[아시아경제 문제원 기자] "일부 몰지각한 아저씨들 때문에 아주 불쾌할 때가 있어요. 반말은 물론이고 계산할 때 돈을 던지는 경우도 많아요."
서울에서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는 김선경(27·여·가명)씨는 최근 '아저씨 혐오' 증세를 호소하고 있다. 일을 하기 전에는 몰랐던 몇몇 아저씨들의 황당한 행동들 때문이다. 주문을 할 때 대뜸 기분 나쁜 반말을 내뱉는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돈을 던지거나 어떤 요구를 한 뒤 마음대로 안 되면 화를 내기도 한다. 얼마 전엔 한 아저씨가 '내 애인하자'며 성희롱 섞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김씨는 "점잖은 아저씨도 많지만 무례한 손님은 대부분 아저씨"라며 "밖에서도 아저씨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피하게 돼 걱정이다"고 말했다.
일부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아저씨에 대한 혐오 증세를 표출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권위주의에 기대 약자에게 '갑질'을 하는 40~50대 중장년층을 일컫는 '개저씨(개+아저씨)'란 신조어가 나타난 게 대표적이다. 이런 아저씨들은 빠르게 변화한 세대를 따라오지 못한 구시대적 발상의 소유자라는 지적이 있지만, 각종 혐오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사소한 행동 때문에 '마녀사냥' 식으로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빅데이터 전문기업인 '다음소프트'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개저씨’의 언급 회수를 조사한 결과 2013년 188건에서 지난해 7만6766건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온라인 상에는 '개저씨 경험담'이나 '개저씨 눈빛 퇴치법' 등이 공유되기도 한다. 이들은 '공공장소에서 새치기 하는 아저씨', '회사에서 회식을 강요하는 상사' 등 각자의 경험담을 쏟아내며 아저씨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다.
대학생 박모(25·여)씨도 최근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 반려견을 데리고 집 앞에 산책을 나갔는데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지나가는 아저씨가 강아지가 길을 막는다며 발로 찬 것이다. 다행이 강아지가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화가 나 아저씨한테 따지니 오히려 "몇 살인데 예의 없게 구냐며" 타박을 당했다. 박씨는 "좋은 아저씨도 많지만 동네 아저씨나 택시 아저씨들한테 무례한 경험을 당한 적이 있다"며 "이미지가 좋지 않은 건 사실"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일부 아저씨 혐오가 확대되는 이유와 관련해 기존의 남성중심의 사회가 점차 평등화되기 시작했지만 아직 상당수 남성들은 변화된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박은아 대구대 심리학과 교수는 "아저씨는 과거 대개 연장자라는 이유로 대접 받던 사람들이 많지만 최근엔 연장자라고 해서 무조건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희미해졌다"며 "상대적으로 과거에 억눌렸던 여성이나 젊은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존중받고 싶다는 인식들이 팽배해지면서 아저씨들과의 갈등이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아저씨'는 남성이나 여성과 같이 체계화되고 강고한 분류체계가 아닌 만큼 아저씨 혐오는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다. 김지호 경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혐오 대상이 되는 아저씨는 보편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들을 하는 일부 중년을 일컫는 것 같다"며 "아저씨 중에도 '젠틀'하고 세련된 '아재파탈(아저씨+옴므파탈)'이라고 불리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이런 '아저씨'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며 '개저씨'도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수동공격가설'을 예로 들며 아저씨 혐오가 현대인의 잦은 목표 좌절과 연관이 있다고 분석했다. 사람들은 목표에서 실패를 경험하면 다른 대상을 향해 공격성을 드러내는데 그 비난의 화살이 아저씨로도 향하면서 혐오가 확대된다는 얘기다. 양 교수는 "시대가 굉장히 빠르게 변하는 과정 속에서 사회 부적응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아저씨 혐오를 비롯해 남성혐오, 여성혐오, 아줌마 혐오로 번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고 말했다
결국 늘어나는 혐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박 교수는 "최근에는 사람을 벌레에 빗대 '충'을 붙이는 신조어가 생길만큼 공격성이 늘어났다"며 "혐오를 표출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조금씩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양 교수 역시 "혐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문제의 원인을 외부뿐 아니라 내부에서 찾는 성찰도 중요하다"며 "21세기에 진짜 중요한 단어가 배려다. 학교와 사회에서 충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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