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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바꿔봐요]건설엔지니어링, 바른 길이 빠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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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외길 건설엔지니어'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의 주문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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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금 건설분야에서 그간 성과를 보지 못하던 고부가가치 과제들, 특히 설계엔지니어링과 사업관리 분야의 해외진출을 본격적으로 독려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금융을 지원해주고 사업관리 방식도 국제은행의 틀 등을 대폭 참조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건설산업의 글로벌화를 위하여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노력이 성공을 거두기 위하여는 "바로 가는 것이 결국은 빨리 가는 것"이라는 마음에서 우리의 실상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1. 엔지니어링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엔진(engine)'이라는 단어는 인류만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합니다. 처음에는 '군사적 목적을 위한 기기(機器)'를 의미했었으나, 그 후 넓게 해석하여 '자연 현상을 응용하여 인간의 삶에 도움을 주는 도구들'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엔지니어링'은 그 일을 하는 행위이고, '엔지니어'는 그러한 행위를 하는 사람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20세기초 일본이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하여 시작한 철도, 항만 건설 등으로부터 현대식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우리나라는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되기까지는 거의 발전이 없이 답보 상태에 있었습니다. 한국에 민간 설계엔지니어링회사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당시 관공서에서 일하던 토목기술자들이 나와서 회사를 차린 1960년대 전후입니다. 엔지니어링은 말 그대로 지식과 경험 축적의 산물입니다. 수없이 많은 탐구와 시행착오를 통해 축적된 자료를 자산으로 설계를 하고 사업관리를 하는 전형적인 지식산업입니다. 지금 국내에는 많은 건설엔지니어링회사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선진국의 엔지니어링회사들에 비하면 질적인 면에서 일천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술 자체는 나라의 구별이 없을 정도로 보편화되었고 우리 기술자들도 상당한 수준에 있지만, 이를 운용하는 제도는 아직도 많이 낙후되어 있다고 봅니다. 돌아가거나 건너뛰기는 어렵더라도 빨리 갈 방도는 찾아야 합니다.

2. 한국의 건설엔지니어링산업은 아직 덜 진화되었습니다.
건설엔지니어링산업이 관공서에서 일하던 기술자들로 부터 시작된 것은 우리나라만의 역사는 아닙니다. 서양에서도 19세기 이전에는 아래 왼쪽 그림과 같은 형태의 조직으로 운영되었으나, 19세기 중반 이후 발주자들이 더 정밀한 설계를 요구하게 되고, 특히 미국에서 급격히 인프라 건설이 늘어나면서 설계자와 시공자가 분리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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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건설엔지니어링회사에는 지금도 관공서에서 일하던 기술자들이 지속적으로 영입되어 발주처 영업과 용역관리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면 탓할 일이 못됩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관공서의 업무추진체계나 순환보직 환경에서는 전문성이나 책임의식이 결여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관공서 출신 기술자들은 퇴직 후 민간 기술자들 보다 유리한 평가를 받도록 한 지금의 입찰 제도는 개선되어야 합니다.
설계·시공일괄(Design-Build)방식이나 시공책임형 건설사업관리(CM at risk) 방식 같은 진전된 형태는 이미 오래 전에 미국 시장에 도입된 것인데, 이러한 방식의 도입 배경에는 기존 시장의 지배자들이 신참자들을 배제하려는 전략이 숨어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건설엔지니어링산업이 얼마나 빨리 새로운 형태,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경쟁력을 갖추느냐가 한국건설산업 생존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설계엔지니어는 최종목적물 설계에 집중해야 합니다.
설계엔지니어링회사의 기본 업무는 건설회사로 하여금 발주처가 요구하는 최종목적물을 시공할 수 있도록 계약서, 시방서, 도면, 내역서 등의 계약문서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건설계약에는 최종목적물을 시공하는 방법은 물론 임시로 필요한 가설공사까지도 발주자가 지정해주고 있고, 본사관리비 및 이윤의 상한선도 입찰서에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항목들은 전적으로 입찰에 응하는 건설회사의 기술역량과 경영적 판단에 의하여 제시되어야 하고, 건설회사를 선정하는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의 건설시장이 지금의 행태로 계속되어 온 배경에는 정부 주도의 품셈 운용과 제값을 받는 전문건설시장이 형성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설계엔지니어들은 최종목적물의 설계에 집중하되 특히 부가가치가 높은 뼈대엔니지어링에 더 집중한 설계를 하고, 자기가 설계한 현장에 대하여 준공까지 책임을 지고 그 결과를 다음 설계에 피드백하는 선순환이 되도록 제도적 틀을 만들어 주여야 할 것입니다. 디테일한 엔지니어링은 현장의 엔지니어들이 수행토록 하는 설계업무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옳은 방향입니다.

4. 엔지니어링 영역은 엔지니어가 스스로 지켜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만나본 민간의 전문엔지니어들의 생각의 공통점은 우리 건설엔지니어링의 현 행태가 너무 고착화되어 있어서 자기들이 넘어설 수 있는 테두리가 아니라고 체념하거나 개선할 의지가 없다는 점입니다.

지금의 분위기로는 수주 영업이나 과업 수행 중 생긴 문제를 발주처 출신 기술자들이 해결해주는데 만족(?)하고 있어, 그들 스스로의 의지로는 더 이상 제도 개선이나 발전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설계엔지니어들의 연봉이나 복지 수준이 건설회사의 엔지니어들보다 많이 열악한 점은 선진국에서 보기 힘든 매우 비정상적인 현상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유능한 젊은이들을 끌어들여 부가가치 높은 지식산업을 키우겠다고 하는 것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회사나 개인이나 비록 여러 가지로 열악한 환경에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후발주자로서 세계무대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강점 즉, 가장 최근에 대형 인프라를 건설한 경험과, 세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 환경을 가진 나라라는 명성과 지위를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대학이나 연구소가 주도하여 글로벌화를 추진할 것이 아니라, 실무에 종사하는 엔지니어들 스스로가 선진 기법과 제도를 익혀서 세계 어느 곳이든 적용할 곳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굳이 한 가지 덧붙이자면, 학교에 가서 후배들을 키워주실 것을 제안합니다. 이 젊은이들이 졸업 후에 자기 회사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개인 자격으로 해외 엔지니어링회사나 건설회사에 취업하여 자기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실무를 가르쳐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건설관련 학과나 분야의 인재들이 이 산업을 기피하거나 떠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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