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초동여담] 물거품이 된 대어의 꿈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는 게 이런 것일까. 준비 과정부터 생초보 '바다 낚시꾼'의 처지를 망각했다. 대어(大魚)를 낚으면 어디에 담아올 것인지 걱정했다. 낚시 전문매장에 가서 한눈에 봐도 큼지막한 보관 통을 만지작거렸다. 아들은 기대감 섞인 표정으로 아빠의 전문가적인(?) 행동을 바라봤다. 사실 낚시와 인연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강이나 저수지에서 민물낚시는 경험했다. 제법 씨알이 굵은 붕어도 낚아봤고, 이름 모를 다수의 물고기를 낚은 경험도 있다. 하지만 낚시의 경험은 아주 오래전 일이다. 30년 가까이 된 과거의 기억에 기대어 무모한 도전을 시작하다니….
 낚시도구 구매부터 애를 먹었다. 바다낚시는 낚싯대는 물론 찌와 미끼도 각양각색이었다. 떡밥을 엄지손톱만 한 크기로 둥글게 말아 바늘에 끼우는 민물낚시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점원에게 조언도 구하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정보도 입수한 뒤 드디어 바다낚시 세트를 샀다. 이제 출조(出釣)할 일만 남았다. 목적지는 서해안 영흥도.

 아들은 갯벌체험만큼이나 낚시에 대한 기대에 부풀었다. 아빠와 함께라면 대어를 낚을 것으로 기대한 것일까. 초롱초롱 눈망울은 더욱더 빛났다. 현장 날씨도 나쁘지 않았다. 밀물과 썰물 시간까지 고려해 갯바위로 나갔다. 마침 다른 아빠와 그의 딸도 현장에 있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경쟁 구도가 형성됐다.

 그때만 해도 몇 시간 후의 장면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드디어 낚싯바늘에 미끼를 끼우고 출렁이는 바다를 향해 찌와 미끼를 던졌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주인공이 된 착각에 빠졌지만, 현실은 초라했다. 먼바다를 향해 던진 것 같았는데 바로 앞에 떨어지고 말았다. 대충 봐도 물고기가 지나다니지 않을 공간이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조금 더 멀리 떨어진 곳까지 던지는 데 성공했다.
 이제 기다림만 남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다른 아빠와 딸의 다정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그 아빠는 첫 번째 물고기를 낚아 올렸고, 딸에게 그 성과물을 건넸다. 초조해지지 말자고 되뇌었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 아빠는 연이어 물고기를 낚아 올렸다. 아들과 나는 곁눈질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시간은 계속 지나갔다. 내 낚싯대는 입질도 없었다. 물고기가 없는 곳이라면 다른 아빠의 연이은 성공을 설명하기 어렵다. 왜 내 낚싯대만 외면하는 것일까. 썰물 시간이 되고 물이 빠진 뒤에야 이유를 발견했다.

 내가 낚싯대를 드리운 곳은 돌밭이었다. 수심은 50㎝도 안 됐다. 처음부터 대어의 꿈을 실현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아들에게 멋진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지만,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서해안에 드리운 석양은 참으로 아름다웠는데, 내 발걸음은 왜 이리 무거운지…. 그날 저녁 바비큐 파티로 기분을 전환하려 했지만, 미안함과 아쉬움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류정민 산업부 차장 jmryu@asiae.co.kr





AD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하이브-민희진 갈등에도…'컴백' 뉴진스 새 앨범 재킷 공개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국내이슈

  • 때리고 던지고 휘두르고…난민 12명 뉴욕 한복판서 집단 난투극 美대학 ‘친팔 시위’ 격화…네타냐후 “반유대주의 폭동”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해외이슈

  • [포토] '벌써 여름?'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포토PICK

  • 신형 GV70 내달 출시…부분변경 디자인 공개 제네시스, 中서 '고성능 G80 EV 콘셉트카' 세계 최초 공개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