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전해들은 많은 국민들은, 자신이 인구의 99%에 해당하는 '개돼지 신분'임을 문득 깨닫고 충격과 함께 모멸감에 휩싸였다. 나씨는 신분제를 거론하며 민중은 먹고사는 일만 해결해주면 되며, 정치 따위엔 관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도 덧붙였다.
개돼지는 개와 돼지다. 개는 먹을 것을 주면 꼬리를 치고 반긴다. 주인에겐 오로지 복종만 한다. 돼지는 오직 먹을 것만 밝히는 동물로 여겨지며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개는 사람이 되고자 하지 않으며, 돼지 또한 마찬가지다.
개와 돼지는 자주 욕설에 등장하는데, 개는 주로 비굴하거나 인륜을 모르는 존재를 함의하고, 돼지는 더럽고 미련하며 어리석은 존재를 대표한다. 나 기획관이나 신문 논설주간이 99% 민중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인식의 틀을 웅변하는 상징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노자는 '개돼지'란 말만 안했을 뿐이다. 노자가 도덕경 앞줄(제3장)에서 저런 말을 한 배경은 뭘까. 백성들의 민주의식 함양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고대의 이 지도자에겐 정치적 민주주의보다 백성의 생계문제가 더 급했다. 조물주가 만든 자연의 원칙과 닮은, 스스로의 생리에 순응하고 사는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었다. 자연 속의 피조물들은, 조물주가 될 꿈을 꾸지 않으니 리더와 피지배자는 엄격한 신분의 벽이 있을 수밖에 없다.
1%가 세상을 이끌어가며 모든 규칙을 장악한다는 생각은, 핵심적인 기득권자가 지니기 쉬운 신념인 게 사실이다. 권력자나, 재벌, 언론, 군부, 명망 높은 지식인은 1% 역할론을 은밀한 신앙처럼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향욱이 다만 과격하게 말했을 뿐이지, 현실론적으로 별로 틀린 게 없다는 생각을 부전지로 붙이고 있었을까.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그 1%들이,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짖어대는 99%를 깊이 경멸해온 사회. 나향욱이 까발린 것은 대한민국 특권층의 골수에 박힌 '뇌구조'인지 모른다.
개돼지들은 분노했지만, 그 분노와 무관한 사람들은, 마음 깊숙히 넣어두고 있던 '정신적 신분제'를 들킨 느낌이 아닐까. 나향욱을 자른다고, 이 땅에 깊이 스며든 그 반민주적인 특권철학까지 잘라낸 건 아니다.
빈섬(이상국 디지털뉴스룸 부국장) isom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