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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장대빗속 행군에 풍찬노숙…2016 '국토대장정'에 가다

최종수정 2016.07.11 15:01 기사입력 2016.07.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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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은 어떤 길 위에서도 웃는다

[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르포 기사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나 싶더니 일순간에 장대비가 쏟아졌다. 가뜩이나 축축한 신발에 빗물이 스며들면서 하얗게 물집이 솟아난 발바닥이 욱신거린다. 팔과 등, 허벅지에 오돌토돌 올라온 땀띠는 더욱 가렵다. 앞사람의 배낭을 쫓아 연신 걸음을 옮겨보지만 알이 박힌 종아리가 무겁기만 하다.

장마전선 끝자락이 머문 지난 6일 대구 중대동 팔공산 아래 파계로 대로변. 한 무리의 청년들이 일렬로 행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하루 종일 오락가락하던 날씨는 끝내 폭우로 변했고, 청년들은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듯 쏟아지는 물줄기를 고스란히 맞았다.
제19회 동아제약 대학생 국토대장정 행군모습

제19회 동아제약 대학생 국토대장정 행군모습

 
벌써 6일째다. 지난 1일 오전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에서 출발한 '제19회 박카스와 함께하는 동아제약 국토대장정'에 참가한 대학생들은 이날 오전 공산중학교에서 출발, 10㎞를 걸어 파계로 한 공터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행군한 거리만 165㎞다. 참가자들 대부분이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김덕호(24ㆍ충남대 4학년)씨는 "비만 오지 않으면 덜 힘들 것 같은데 매일 비를 맞고 걷는 것이 고역"이라고 말했다.

국토대장정 첫날부터 장마전선은 지난 5일을 제외하고 쉬지 않고 비를 뿌렸다. 대부분의 대원은 계속 비를 맞고 제대로 씻지 못한 탓에 피부염이 나타났다. 행군으로 인해 발바닥에 생긴 물집은 이미 터져 짓물렀을 정도다. 김명규(24ㆍ한국관광대 2학년)씨는 "어릴 때 축구를 했기 때문에 체력에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사서 고생 왜 하냐고요?"= 올해 동아제약 대학생 국토대장정은 부산에서 출발해 울산과 대구, 상주, 대전, 천안을 거쳐 서울까지 20박21일간 총 597.6㎞를 걷는다. 단순히 행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날씨가 좋으면 야영을, 비가 오거나 궂은 날에는 대강당에서 매일 불편한 잠자리를 견뎌야 한다. 끼니 또한 들판에서 해결하고 있다. 말 그대로 '풍찬노숙'이다. 대원들에게 식사를 보급할 차량과 간이화장실 및 샤워시설을 갖춘 트럭이 함께 이동한다.
하지만 이날 빗속에서 만난 국토대장정 대원들은 한결같이 '긍정 에너지'가 폭발했다. "국토대장정 첫날부터 후회가 밀려 왔다"며 너스레를 떨던 김원철(27ㆍ고려대 4학년)씨는 행정고시를 준비하는데 자신감을 얻기 위해 스스로 고생길을 선택했다고 했다. 김원철씨는 "하루 행군을 마친 뒤 야영장에 도착하면 성취감이 밀려온다"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자신 있다"고 말했다.

마태열(26ㆍ계명대 4학년)씨는 "국토대장정은 대학생 때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졸업 전에 신청했는데 운 좋게 선정됐다"면서 "지금도 무릎이 아프지만 절대 후회는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유럽 배낭여행을 준비 중인 최창민(23ㆍ동의대 2학년)씨는 "유럽에 가기 전에 우리나라 국토 먼저 돌아보고 싶었다"고 참가 동기를 밝히기도 했다. 최창민씨는 "이번 주말에 부모님이 찾아오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눈물이 날 것 같다"면서 "그동안 (손발이) 오글거려서 못한 말인데 '어머니(박정숙 여사), 사랑합니다'라고 꼭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국토대장정 숙영지는 팔봉산 아래 도개온천 로비다. 국토대장정 참가자들은 출발하고 엿새 만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목욕을 했다. 그동안은 '3분 샤워'만 가능했다. 옷을 세탁할 시간이 없어 옷을 입고 샤워하는 '노하우'도 생겼다.

국토대장정 재수 끝에 참가한 안은진(21ㆍ우송대 2학년ㆍ여)씨는 "30분간 씻은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면서 "국토대장정에 와서 가장 좋은 것은 일상 속에서 지나친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19회 동아제약 대학생 국토대장정 참가자들이 부모님께 편지를 쓰고있다.

제19회 동아제약 대학생 국토대장정 참가자들이 부모님께 편지를 쓰고있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사람= 국토대장정 참가자는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다. 21일간 외부와 단절된 채 144명의 대원과 스태프들이 공동생활을 한다. 장맛비와 무더위 속에서 매일 30~40㎞씩 걸어야 하는 극한의 상황인 만큼 참가자들은 '민얼굴'을 드러낸다. 사소한 일에 다투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지독하게 힘든 상황을 함께 경험했다는 공감대가 생기면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더 커진다고 참가자들은 입을 모았다.

안은진씨는 "둘째 날 40㎞를 걸어 밤 10시가 넘어서야 숙영지에 도착했는데 정말 힘들었다"며 "그날 처음 본 친구가 제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중간에 포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대장정에는 단골손님도 많다. 대학생 자격으로 처음 참가했다가 이후 대장정을 돕는 스태프로 참가하는 경우다.

수의사 강민혜(26ㆍ여)씨는 대학생이던 2013년 처음 국토대장정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올해 세 번째다. 수의사인 만큼 실제 의료 활동을 할 수 없지만, 지친 대원들을 격려하고 의료진을 돕는 역할을 한다. 강민혜씨는 "공동생활을 하다 보니 힘들 때도 있지만 다른 사람을 더 배려하게 된다"면서 "국토대장정을 통해 남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번 국토대장정 행진대장을 맡은 최상근(26)씨도 대학교 2학년이던 4년 전 처음 참가한 이후 매년 스태프로 다시 찾고 있다. 최상근씨는 "국토대장정이 군대보다 더 힘들지만, 이상하게 여름이면 걷고 싶어진다"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우리는 하나다'라고 느낄 수 있을 만큼 친해질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국토대장정에서 만나 백년가약을 맺은 커플도 있다. 직장인 윤영기(38)씨는 대학교 3학년이던 2002년 5회 동아제약 국토대장정에서 처음 부인을 만났다. 4회 국토대장정 참가자였던 부인은 이듬해 동아제약에 입사한 후 국토대장정 담당자가 됐고, 윤영기씨가 매년 스태프로 국토대장정을 찾으면서 자연스레 친해졌다. 윤영기씨는 "국토대장정에서는 가장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데 서로 민낯에 반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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