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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문화 프리즘] 오윤 30주기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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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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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의 판화를 보러 가자. 그의 30주기를 맞아 열리는 회고전이다. 우리는 10년마다 오윤을 추모하며 그의 예술에 대해 이야기한다. 1996년에는 '오윤, 동네사람 세상사람'이라는 전작 판화집이 나왔다. 같은 해 6월 21일부터 7월 20일까지 서울 학고재에서 판화전을, 아트스페이스서울에서 판화 자료와 소묘전시회를 열었다. 2006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화, 조소, 판화 등 200여점을 전시했다(9월 22일~11월 5일). 제목은 '오윤 : 낯도깨비의 신명마당'이었다. 미술관은 같은 해 10월 19일 '오윤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주제로 학술토론회도 열었다.

오윤에 대해 회고해야 할 무엇이 우리에게 남아 있을까. 세 차례 회고전에 대한 해설과 추모의 언어들은 판화로 찍어낸 듯 흡사하다. 10주기에 신문은 오윤이 '예리한 칼로 민중의 삶과 정서를 판각'했으며 오윤은 '민중미술의 가능성을 확인한 선구적이고 상징적인 작가'라고 썼다. 오윤이 '민중을 넘어 모두의 사랑을 받았으며 한과 신명, 해학과 풍자가 그의 기본 가락'이라고. '목판에 칼집을 새기고 파고 찍고 하는 힘과 몸이 움직이는 정직성, 칼 맛의 선이 풍기는 예리함과 생명력' 같은 표현도 보인다.
그때 미술평론가 김윤수는 전시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오윤은 오늘날 민중미술의 신화적인 인물"이라며 "그같은 신비주의를 없애고 시대를 초월해 민중과 함께 하는 작가 오윤의 진면목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는 10년 뒤 '오윤: 낮도깨비 신명마당'전의 기획취지를 비슷하게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16일 서울옥션이 연 제138회 경매에 오윤의 목판화 '칼노래'가 나왔을 때, 다시 이런 기사가 보인다. '칼칼한 칼 맛이 만들어낸 강직하고 찰진 선의 목판화…'.

그의 작품이 다시 걸렸다. 미디어에서는 또 한 번 오윤에 대해 쓴다. 소설 '갯마을'을 쓴 소설가 오영수(1914~1979년)의 장남, 마흔 살에 요절,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최초로 현실 비판을 시도한 '현실 동인', 그리고 또 그 '칼 맛'…. 모조리 클리셰(cliche)다. 이런 식이면 오윤은 10년을 주기로 다녀가는 살별과 같다. 살별이란 긴 얼음먼지를 끌며 우주의 행간을 오가는 별붙이니 언젠가는 소멸하고 말 존재이다. 우리는 오윤에 대해서 다 보았고, 그렇게 추모의 정념만이 남은 것인가.

김미정은 2014년에 논문 '한국 현대미술의 민화 차용'을 썼다. 그는 1980년대를 '사회저항과 민중미술, 민주주의에 욕구가 폭발했던 시대'로 규정했다. 이 시기에 "민족 리얼리즘 계열의 미술가들은 민화적 형식을 차용해 민중의 생명력을 간직한 토착문화로 퇴폐한 현대 사회를 재생하려는 목적성이 강했다"고 했다. 김미정에게 오윤은 '삶의 미술을 주장한 현실비판적 미술가'다. 오윤의 작품에서는 '칼춤'이 보여주듯 강렬한 힘과 원초적 생명력이 넘친다.
오윤은 '액자 미술'이 아니라 생활에서 쓰임이 있는 서민 회화를 지향했다고 한다. 그의 판화작업은 포스터, 삽화, 표지와 같은 실제 쓰임이라는 매체의 본성에 충실했다. 그 좋은 예가 풀빛출판사에서 낸 '풀빛판화시선'이다. 오윤의 판화는 '노동의 새벽'(박노해), '붉은 강'(강은교), '황토'(김지하)의 표지를 장식했다. '노동의 새벽'은 압도적이다. 남색표지에 굳게 찍어 누른 듯 굵직한 선이 고뇌하는 노동자의 얼굴을 드러낸다. 표지를 넘기면 박노해의 시, 그 한 줄 한 연이 비통하게 다가온다. '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시다의 언 손으로/장미빛 꿈을 잘라/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을 싹뚝 잘라/피 흐르는 가죽본을 미싱대에 올린다' ('시다의 꿈' 중)

아아, 고통! 강렬한 진통제가 뱃속을 온통 뒤집어 그 고통이 이전의 고통을 잊게 만드는 고통 위의 또한 고통이여.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새벽 쓰린 가슴 위로/차거운 소주를 붓는다/아/이러다간 오래 못가지/이러다간 끝내 못가지'.('노동의 새벽' 첫 연) 이토록 이를 악문 참음과 신음. 끝내 전태일의 몸뚱이를 휘감아버린 분노의 홍염이 저 아래서 위태롭게 혀를 낼름거리고 있지 않은가. 오윤의 판화는 이렇게 밖에 볼 수 없는가. 마디 굵은 주먹과 희번득한 시선, 분노와 슬픔과 갈망.

'칼노래'를 보라. 눈을 치뜬 채 칼을 움켜쥐고 무릎을 굽혀 왼발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림 전체에 힘이 고였다. 이 작품은 김지하의 산문집(남녘땅 뱃노래ㆍ1985년)을 장식하고 있다. 김지하는 "신기가 가득 찬 민초들의 생명력 있는 기를 반영한 것"이라 했으나 맥없는 넋두리다. 그의 영혼이 오윤을 담을 수 있으랴.

전설은 소설가 오영수의 아들로 태어난 천재의 때이른 죽음이라는 대목에서 비장미를 더한다. 나는 중학생 시절, 국어 교과서를 장식한 '요람기'를 읽으며 체험하지 못한 과거를 추억하였다. 정월 보름, 소년이 연을 날려 보낸다. 연은 실과 얼레와 주인을 남기고 떠나가 버린다. 새처럼 나뭇잎처럼 까마득히 떠나간다. '어쩌면 무지개가 선다는 늪, 이빨 없는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고 산다는 산 속, 집채보다도 더 큰 고래가 헤어 다닌다는 바다, 별똥이 떨어지는 어디쯤…. 소년은 멀리멀리 떠가는 연에다 수많은 꿈과 소망을 띄워 보내면서, 어느 새 인생의 희비애환과 이비(理非)를 아는 나이를 먹어 버렸다…'.

아버지의 붓과 아들의 끌 사이는 하염없이 먼가. 그러나 상상하노니, 연이 하염없이 날아가 나무 꼭대기에 걸친 미지의 마을 어귀이거나 호랑이 담배 피우는 연기 자욱한 숲 속 오두막 아래서 아들은 말없는 아비가 되어 홍두깨를 깎으리라. 아버지는 마음 약한 아들로 태어나 먼 곳으로 떠난 이웃집 계집아이에게 답장 없는 편지를 써 보내리라. 윤회와 인연의 사슬이 엄연하다면 반드시 그러하리니.

'오윤 30주기 회고전'은 서울 평창동에 있는 가나아트갤러리에서 지난 24일에 시작되어 오는 8월 7일에 끝난다. 판화뿐 아니라 테라코타, 캔버스에 그린 유채화, 종이에 그린 먹선 채색화 등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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