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미술관, 日판화전
현대미술로 재탄생한 '우키요에'
이우환 작가 판화도 전시
일본 현대판화가 노다 테츠야(76)의 작품이다. 1968년 제작된 이 판화는 일본 전통 목판화에 실크스크린 기법을 더해 제작했다. 실크스크린은 사진원판을 활용해 쉽게 도안을 만들 수 있는 기법으로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1928~1987년)도 자주 사용했다. 노다가 단체사진을 모티브로 해 선보인 '일기'라는 이 판화 시리즈는 당시 대단히 특이한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근세 일본회화의 정취와 함께 평면적이고 그래픽한 서양의 팝아트적 요소가 섞여 있다.
일본 미술사에서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로 이어지는 시기는 '판화의 황금시대'로 불린다. 17세기 일본 에도시대 서민층에서 발흥한 풍속화 '우키요에'의 국제적인 유명세와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과거와는 다른 실험정신과 독자적이며 색다른 표현세계가 전개됐다. 일본 정부가 자국의 현대판화예술을 알리려는 정책적 지원도 한몫했다. 1957년 도쿄판화비엔날레가 열리면서 일본 현대판화는 기법이나 주제 면에서 국제적 감각을 갖춰나갔다. 1960년대 이후 일본 사회는 텔레비전과 자동차, 에어컨 등 가전제품이 일반 대중의 소비를 자극하고, 고도의 경제성장을 과시하던 풍요의 시기였다. 영화와 만화, 포스터, 간판 등 시각 이미지도 넘쳐났다. 1970년대 판화는 이 같은 영상과 이미지의 시대를 반영하며 작가의 예술적 실험을 표현했다.
기무라 코스케(80)가 1971년 실크스크린과 석판화를 겸용한 작품에는 잡다한 사진영상의 단편들이 나열되거나 중첩돼 있다. 정보 과다의 현대사회가 지닌 떠들썩함과 우울함이 배어나온다. 가와구치 타츠오(76)는 녹슨 못이나 꺾쇠를 넣은 종이를 뜨는 식으로 작품을 제작해 판화 개념을 확대했다. 가와구치는 1960년대부터 '물질과 인간은 등가'라는 사고를 기본으로, 물질과 인간 또는 다른 물질 간의 상호관계를 주제로 작품을 제작해 왔다. 이는 일본의 아방가르드 미술운동인 '모노하(物派)'와도 연결된다. 일본에서 '모노하' 작가이자 평론가였던 한국 작가 이우환(80)의 판화도 나와 있다. 화면에서 잉크와 종이가 이루는 여백과 긴장의 미가 돋보인다.
지난 2일 이번 전시와 관련해 강의를 한 다키자와 쿄지(54) 일본 도쿄 마치다시 국제판화미술관 학예원은 "일상 속에 흔하게 소비되는 이미지를 이용해 우끼요에와 같은 서브컬처로 일본의 독자적인 팝아트가 된 것이 바로 일본현대판화"라고 했다. 다키자와와 대담을 한 일본 근현대 미술사가 최재혁씨(43)는 "판화는 회화이자 조각이며, 원본이 있고 복사본이 있다. 판화의 주제는 꽤 논쟁적인 것들이 많고, 미디어의 역할을 해 왔다"며 "이번 전시는 판화라는 장르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며, 판화를 축으로 삼아 일본 현대 미술사를 조감해 볼 수 있게 한다"고 했다. 4월 3일까지. 031-481-7000.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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