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 "왜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의전)을 계속 하시나요?"
이와 관련해 그룹 관계자는 "아무리 윗선에서 하지 말라고 해도 아랫사람들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기 쉽지 않은 거 아니냐"며 "그러다보니 의전을 계속 챙기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임원들은 수년째 지속한 의전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의전을 원치 않는다'는 명확한 지침을 내려줄 필요가 있다"며 "이 부회장이 돌직구를 날린 것은 좀 더 명확한 지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해외 출장을 갈 때면 수행비서를 동원하지 않고 홀로 움직인다. 그룹에서 보유하고 있던 전용기도 이미 지난해 모두 매각했다. 의전으로 인한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겠다는 의도에서다. 이 부회장의 '실용주의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재용식 실용주의는 출장 외에 다른 부분에서도 도드라진다. 삼성의 대표적 연례 행사인 호암상 행사는 26년만에 처음으로 올해 만찬을 없앴고 수상자와 삼성 임직원 중심의 차분한 내부행사로 바꿨다. 1년 전(지난해 6월23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섰던 것도 그동안 대기업 오너들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는 평가다.
구체적으로는 ▲호칭 통일(혹은 이름 부르기) ▲직급체계 간소화 ▲선발적 승격 ▲성과형 보상 등이다. 지난 3월 말 수원사업장에서 발표한 '컬처혁신 선포식'에 이어 세부적인 안을 내놓고 위에서부터 혁신을 꾀하려는 것이다. 비효율적인 회의시간을 단축하고, 불필요한 보고체계를 간소화하고, 잦은 야근과 주말특근을 줄이는 방안이 포함된다.
삼성전자가 이같은 선포식을 발표함에 따라 타 계열사들도 기업문화 혁신에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제일기획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모든 직원이 서로를 '프로'로 부르고, 삼성증권은 'PB'로 통일하기도 했다.
삼성 계열사 관계자는 "호칭만 편하게 바꾼다고 해서 갑자기 수직적인 조직이 수평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며 "이 부회장의 실용주의가 성공하느냐는 조직 문화가 얼마나 혁신적으로 변하느냐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삼성의 실험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은별 기자 silversta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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