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고등교육 기관인 대학 역시 생자필멸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근대 대학의 기원은 12세기경 설립된 이탈리아 볼로냐대학과 프랑스의 파리대학에 있다. 볼로냐대학은 11세기 이래 로마법의 권위자인 일네리우스를 비롯한 많은 법학자들이 열었던 개인학교에 모인 학생들의 길드에 기원한다. 이에 반해 파리대학은 파리 주변의 성당이나 수도원 부속학교에서 강의하던 교사들이 결집해 탄생한 것이다.
위기는 두 개의 진원에서 오고 있다. 하나는 IT와 교육의 결합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 진화의 가속화이다. IT와 교육 결합의 대표적인 형태가 온라인 강의인 무크(MOOC)이다. 이를 두고 파우스트 하버드대 총장은 '지진'으로, 헤네시 스탠퍼드대 총장은 '쓰나미'로 표현하기도 했다. 또 라파엘 라이프 MIT 총장은 '교육에서 종이 이후 가장 중요한 혁신'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무크는 점차적으로 한국 대학의 교육 과정을 잠식할 것이다.
글로벌 무크는 한국어라는 언어 장벽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대학 과정 중 먼저 교양과정을 파괴할 것이다. 예를 들어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등의 명강의가 AI에 의한 자동번역을 통해 전달되면 그 순간 대부분의 국내 교양 과정은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다음 타깃은 전공 영역이 될 것이다.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경영학 강의가 무크로 제공되면 국내의 경영학 교육은 초토화될 것이다. 하버드대의 저명한 마이클 포터 교수와 내가 동시에 전략론 강의를 개설할 때 학생들이 누구의 강의를 선택할지는 자명하지 않은가. 그리고 마침내 삼성전자나 네이버가 입사 자격에서 미국의 무크 과정을 인정하게 된다면 한국 대학은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그런데 대학이 위기인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이러한 급진적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내적 역량이 결여되어 있다는 데 있다. 대학 교수들은 균질화되어 여러 배경과 경험을 기반으로 한 이질성과 다양성이 부족하다. 더구나 지난 10여 년간 대학평가라는 미명하에 진행되어 온 대학의 서열화는 별 의미 없는 논문의 대량생산을 강요했고, 그 과정에서 교수들의 창의성과 자발성은 말살되어 왔다. 대학사회가 냉소와 무관심, 다른 전공 교수들과의 협력이 단절되어 있는데 어디서 융합을 하고, 혁신을 하겠는가.
내가 20년 후 다시 대학 교정을 찾을 때 어떻게 변화되어 있을까. 두려울 뿐이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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