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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문화 프리즘]시대의 변주곡 '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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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한국대중예술사, 신파성으로 읽다'

한국대중예술사, 신파성으로 읽다

한국대중예술사, 신파성으로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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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신파(新派)'라는 낱말을 떠올릴 때 우리 내면은 혼란스럽다. 언어와 감각과 인식이 충돌한다. 우리는 신파가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한다. 촌스럽고 저질스럽고 낡았다고 생각한다. 촌스러움과 저질스러움과 낡음은 우스꽝스러움을 낳는다. 그런데 신파는 새로운 물결이며, 영어로는 뉴웨이브(new wave)가 아닌가.

이영미는 차근차근 설명한다. 책은 논문 덩어리다. 그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 책은 근ㆍ현대 한국대중예술ㆍ대중문학에 나타난 '신파성'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주ㆍ변화되었는지, 그리고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살피는 연구다." 그의 학문은 깊다. 그래서 그의 글은 읽기에 어렵지 않다.
신파는 일제강점기 대중예술사의 첫 장에서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여러 종류의 예술에서 고루 쓰인 말이다. '새로운 경향의 연극'이라는 의미로 출발하여 일본으로부터 유입된 특정한 공연관행을 지닌 연극 양식을 이르는 말로 정착한다. '과장된 대사 억양과 움직임, 과도한 비애를 드러내는 최루적 경향…'.

이영미가 보기에 신파, 신파성을 띤 작품들은 20세기 중반부터 촌스럽고 통속적이며 저속하다는 비판과 조롱을 받아왔다. '신파', '신파적'이란 말은 그 자체로 평가절하의 언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신파적 미감(美感)은 인기의 중심에 있었고, 20세기 후반에도 오랫동안 대중적 인기를 모아왔다.

신파성에 대한 연구는 "대중이 세상의 슬픔과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견디고 드러내며 살아갔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대중예술은 고통스러운 세계에 대한 거부ㆍ저항이라는 측면과 고통의 정서적 해소ㆍ위안을 통해 순응하게 하는 양면성이 있다. 그러니 그 연구는 예술의 본질에 대한 점검이다.
이영미는 강영희가 1989년에 발표한 논문 '일제강점기 신파양식에 대한 연구'에 주목한다. 신파의 특성은 '행위와 관념의 이율배반'이다. 이율배반은 비주체적 자아가 현실의 전횡성에 압도당함으로써 발생한다. 여기서 피해의식과 죄의식이 복합된 자학적 감정이 생기고 과잉된 눈물이 해소적 위안으로서 표출된다.

이영미는 신파성과 그 전유방식이 자본주의적 근대의 대중이 지니는 세계전유 방식 중 기초적인 것으로 본다. 신파성의 핵심을 억압적 세계 속에서 욕구와 욕망을 억눌린 무력한 자아가 저항하지 못하고 '스스로' 굴복함으로써 갖게 되는 자학과 자기연민의 태도로 보는 것이다.

저자는 신파성의 정체를 찾아 시간여행을 떠난다. 신문연재소설 '쌍옥루(1912)'와 '장한몽(1913)', 연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1936)', 이미자의 노래 '동백 아가씨(1964)'를 거쳐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1968)', 심수봉의 노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1984)', 텔레비전 드라마 '모래시계(1995)'를 살핀다.

'장한몽'을 모르는 독자도 '김중배의 다이아반지'는 안다. "김중배의 다이아 반지가 그렇게도 탐이 났단 말이냐? … 놓아라. 놓지 않으면, 이 다 떨어진 구둣발로 네 가슴 짝을 차버리고 말겠다!", "수일 씨의 아픔이 사라지고 괴로움이 풀리신다면, 백 번 천 번이라도 이 멍든 가슴팍을 짓밟아주세요!"

연극과 영화 심지어 코미디로 수없이 재생된 이 대사. 원본 '장한몽'에 이런 대사는 없다. 그러나 허구의 작품 세계에 그럴 법한 대사 한 줄 치기는 가끔 있는 일이다. '애드리브'가 이 전통을 계승하지 않는가. 그런데 가령 이런 애드리브, 압도적이고도 불가해한 이 들이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부모님을 다 흉탄에 잃고 고아가 되어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집으로 이사하여 보니 방 다섯 개 중에 관리인과 가정부 방, 짐을 놔둔 방을 빼니 사용할 수 있는 방은 두 개 뿐이더라…."

나의 독서는 책에서 자기연민, 굴복, 회피 같은 언어를 만나 행간을 부유한다. 책을 덮고 생각하느니, 만약 신파가 혐오스럽다면 신파의 원죄인가 오ㆍ남용의 대가인가. 신파는 회피의 기술일까. 그래서 자꾸 밖으로 달아나게 만드는가. 신파는 공포의 산물인가. 그래서 알아듣지 못할 말로 철벽을 치게 만드는가. huhball@


<이영미 지음/푸른역사/3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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