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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칼럼] ‘술 끊으라’고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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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석(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남 화순보은병원장>

<김한석(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남 화순보은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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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보은병원 김한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 빠져 지푸라기를 잡고 있는데 누군가 갑자기 그것을 놓으라고 한다면 그 누가 이를 실천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중독자들은 이 같은 절박한 상황에서 한 오라기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술에 의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에 놓여있는 그에게 무작정 “술만 끊어라!”, “술 좀 줄여.”라고 강요하는 것은 의지하고 위로받고 있는 유일한 대상을 포기하라는 요구와 같아서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는 너무 막연하고 힘든 일이라고 봐야 마땅하다.

그래서 “술을 끊어봐야지!”, “줄여야지!” 하는 그들의 시도들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다시 음주가 시작되고 이전처럼 폭음을 반복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렇다면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지푸라기를 잡고 겨우 물 위에 떠있는 위급한 상황의 그에게 우리는 과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현재 그가 처해 있는 그 상황을 변화시켜주는 것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겨우 지푸라기에 의존하고 있는 그에게 지푸라기를 놓으라 마라 할 것이 아니라 그의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먼저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폭음하고 장취하는 문제적인 행동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술 이외에는 전혀 의지하거나 위로 받을 대상이 없는 상황에 대해서 먼저 초점을 맞추고 논의하고 해결해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단주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쌩단주’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술을 끊고 있는 사람들 중 ‘죽기 살기로 술만 끊고 있는 상태’를 이야기한다. 즉, 그토록 주변 사람들과 자신이 원하는 단주를 죽을 힘을 다해 실천하고 있기는 하나, 외롭고 우울하고 힘들어 스스로 행복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술을 좀 줄여 보겠다거나 단주를 하겠다던 결심이 결코 오래 유지될 수가 없을 것이다. 물론 ‘쌩단주’도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쌩단주’일 망정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노력이 반복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그 사람은 충분히 칭찬과 격려를 받아 마땅하다.

다만, 좀 더 건강한 회복을 원한다면 중독자뿐만 아니라 그 중독자를 돌보고 있는 주변의 모든 이들이 술을 끊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먼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단지 “술을 끊자!”라는 구호를 강요하기보다 그의 하루하루가 보다 즐거워지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진다면 굳이 술을 억지로 끊으려 하지 않아도 그의 손에서 자연스레 술이 조금씩 멀어져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술을 먹지 않고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생겨나고, 술을 마시지 않고도 즐거울 수 있는 취미활동이 생겨나고, 술을 마시지 않아도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아가게 된다면 쌩단주가 아닌 훨씬 더 건강한 방법으로 회복에 가까워져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중독은 사회나 술로부터 단순 격리를 시키는 것 보다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알아가고, 술 없이도 즐겁고 새로운 대인관계에 대한 연습을 반복하며, 술 없이 즐겁게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취미나 활동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연코 중독은 자신의 성격적인 결함까지 점검하고 변화시켜 나가야 하는 생각보다 훨씬 더 전문적이면서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단지, “너는 그깟 술 하나도 못 이기냐?”라고 비난할 만한 간단한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주변에 술독에 빠져 혼자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그 사람을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에 대해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만약 혼자의 힘으로 해결하기 힘든 어려움으로 인해 그 해결책으로 술에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대인관계, 긍정적 사고, 성격적 문제의 극복, 삶에 대한 태도 등에 대한 다양한 점검과 전문적인 치료적 준비가 되어있는 의료기관에서 가족과 함께 다양한 노력과 치료를 통해 ‘쌩단주’가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하는 것을 권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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