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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벼랑 끝 조선·해운…산업 재편플랜 다시 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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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971년 영국 바클레이은행을 찾아가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들었다.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던 민족인데 산업화가 늦어졌을 뿐이니 잠재력을 믿어달라”고 설득해 차관을 얻어냈다. 고도 성장을 이끌었던 상징적인 일화다.

조선업은 전자, 자동차와 함께 한국 경제의 대표 업종이었다. 지금도 수주잔량으로 따졌을 때 중국에 이은 세계 2위의 강국이며 단일조선소 기준으로는 선두권을 독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일감은 확보하지 못해 1년반 정도만 지나면 문을 닫아야할 정도여서 구조조정의 격랑에 내몰린 상태다. 해운업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두 곳의 국적 해운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갈 수도 있는 위기에 놓여 있다. 바다를 주무대로 한 조선업과 해운업이 모두 바람 앞의 등불 신세다.

구조조정 과정을 거친 이후 조선과 해운 업계는 어떤 형태로 달라질까. 우선 해운업부터 보면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용선료(선박 임대료) 협상을 실패하면 법정관리를 피할 길이 없다.

2000년대 초중반에 해운업이 활황일 때 지나치게 높은 용선료로 계약을 맺은 것이 치명적이다. 세계 경제 침체기인 최근 시세에 비하면 4~5배나 높은 돈을 꼬박꼬박 내야 하다보니 아무리 지원을 한다고해도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며 해외 선주들만 이익을 보는 꼴이 된다.
양대 해운사는 최대 30%까지 용선료를 낮추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상선의 경우 다음달 중순까지가 협상 시한이다. 금융당국은 이 협상이 실패할 경우 법정관리로 갈 수밖에 없다고 공언했다. 명운이 달린 협상이다.

선주 입장에서도 회사가 문을 닫으면 결과적으로 손해라는 점을 강조하며 벼랑 끝 협상을 하고 있다. 협상에 성공한다면 사채권자들의 채무 조정과 자율협약 채권자 채무 조정 등 후속 단계를 밟게 된다.

금융당국은 양사의 합병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게 공식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규모를 줄이는 ‘다운사이징’은 불가피한 수순이며 당국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 입장에서 보더라도 경기 침체로 매년 막대한 적자를 내고 있는 두 개의 해운사를 계속 유지해 가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진다. 합병 카드가 유력하게 거론되는 이유다.

조선업은 해운업에 비해 고용 규모가 훨씬 크기 때문에 더 심각하다.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이른바 빅3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은 협력업체까지 포함할 때 14만명이 넘는다. 구조조정 결과에 따라 수만명의 실직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거제를 비롯한 지역경제 역시 치명타를 입게 된다.

빅3의 지난해 영업손실 규모는 현대중공업 1조6764억원, 삼성중공업 1조6646억원, 대우조선해양 3조765억원으로 모두 합하면 6조4175억원 규모다. 올해도 1분기에 현대중공업에 3척을 수주한 외에는 실적이 없다. 이대로 가면 1~2년 후에 일감이 없어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조선업 재편은 정부가 키를 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가 산업은행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현재 업체 통합 등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은 모두 소유주가 있는 민간 기업인데 정부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바람직한 방법도 아니다”고 한다.

하지만 민간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막대한 부채를 짊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 역시 채권단의 의사가 주된 역할을 한다. 구조조정 계획 이행 여부를 채권단이 점검해 간다.

재편을 하려면 명분이 필요하다. 그래서 조선업 전반의 미래 포트폴리오, 선종별 수급 전망, 업체별 최적 설비 규모 등을 파악하기 위한 업계 공동의 컨설팅을 금융당국이 추진한다. 객관적인 데이터가 나오면 대우조선을 다른 조선업체와 합치거나 아예 제3의 사업자에게 넘길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은 구조조정을 질질 끌지 않고 속도감있게 진행한다는 방침이어서 이르면 상반기 중 조선업 컨설팅 결과가 나오고 재편 방안까지 도출될 수 있다.

어떤 식으로 가든 조선업 인력 감축은 피하기 어려워보인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이다. 업황이 급속히 악화되고 대량 실업이 예상되는 업종을 대상으로 한다.

고용유지지원금을 지급하며 고임금 임직원의 임금 삭감 또는 임금 인상 자제, 임금체계 개편, 근로시간 단축 등을 지원한다. 근로자에게는 퇴직 전후에 맞춤형 전직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며 하루 4만3000원가량씩 최대 240일간 실업급여를 지급한다.

구조조정의 또 다른 변수는 국제통상 분쟁 가능성이다. 특히 조선업의 경우 유럽과 일본 등 경쟁국에서 이 참에 한국 업체들이 퇴출되기만을 바라고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나서 도와주려 한다고 판단하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으로 제소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다음달 열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선전문위원회 회의에서 지난해 대우조선에 대한 4조2000억원 지원 방안의 적정성 여부를 안건으로 다룰 예정이다. 한국 정부 대표단이 참석해 WTO 규정 위반이 아님을 설명할 계획이다. 향후 진행되는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통상분쟁의 소지가 없도록 하는 것이 주된 관건 중 하나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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