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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의 최대비밀…'이순신 창조경제'를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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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년전 오늘 태어난 임진왜란의 성웅…그는 왜 그 전함을 만들었을까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거북선은 임진왜란이란 조선 최대의 위기 속에서 떠오른 최고의 '히트제품'이었다. 파죽지세로 공격해오던 왜군을 막아선 조선수군의 괴상한 배. 거북선은 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왜란의 판세를 역전시킨 이 군함에 대한 인문학적이고 경제학적인 가치에 대한 분석은 뜻밖에 많지 않다. 471주년 충무공 탄신일을 맞아 이순신의 역작, 거북선의 비밀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만화 '이순신'. 사진=온리 콤판의 만화 출판 프로젝트 캡처

만화 '이순신'. 사진=온리 콤판의 만화 출판 프로젝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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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거북선은 이순신의 창작품일까. 그렇지 않다. 180년 전인 태종 시절에 이미 구선(龜船)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다. 거북선과 왜선(倭船)이 싸우는 것을 왕이 직접 구경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기록의 맥락으로 보면 그 당시 거북선에 대해 왕이나 기록자가 신기해하는 느낌은 없어보인다. 즉 그 이전부터 거북선은 계속 제조되고 있었다는 얘기이다. 이순신이 거북선을 구상하고 만들 때 그가 그것을 무(無)에서 유(有)로 창안한 것이 아니라는 점. 이것이 중요하다. 창조경제가 세상에 없던 경천동지할 뭔가를 내놓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것을 시대의 요구에 맞게 리폼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을 이순신은 알고 있었다. 거북선이 지니고 있는 '장점'을, 기존의 경험들을 통해 이미 축적하고 있는 것이 그에겐 유리한 자산이었다. 이순신이 창의적이었던 것은 거북선과 임진왜란이라는 비상상황을 결합시켜, 그 위력을 극대화시킨 점이었다. 그의 '벤처'는 거북선의 창조가 아니라, 거북선의 위력을 창조한 것에 있었다는 얘기다.
이순신은 왜 거북선이 임진왜란이란 상황에서 최적의 전함이라고 판단했을까. 전쟁의 환경을 분석해보자. 이 전쟁은 조선이 먼저 시작한 전쟁이 아니기에 방어적인 성격을 띨 수 밖에 없었다. 전쟁을 준비해서 공격해오는 쪽과 그것을 막아내야 하는 쪽은 사기(士氣)와 심리적인 부담 측면에서 상당히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전력(戰力)에서 상당히 우세하더라도 심리적인 위축과 당황 때문에 판단 착오와 행동 실수를 할 가능성이 큰데 하물며 조선의 경우는 일본보다 무기와 병력이 훨씬 열세였다. 이걸 극복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였다. 이순신은 불리한 판세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작전을 짰을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이쪽의 불리한 상황과 심리적 위축을 감추는 것이었다. 아군의 상황이 노출되지 않아야 하고 병력 열세를 보이지 않게 해야 한다. 거북선은, 배의 위쪽을 뒤덮은 것은 이런 아이디어다. 배 위에 몇 명이 타고 있는지 혹은 무기의 상황은 어떤지를 파악할 수 없게 하라. 여기서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철판을 사용하는 것은 이순신이 기존의 거북선에서 발전시킨 아이디어였다.

거북선 띄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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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갑선은 적의 총격과 포격을 무력화시켰다. 거기에 지붕과 벽으로 둘러싸인 배였는지라 적은 아군의 화포 위치를 알기 어려웠다. 접전에서 승선을 시도하던 왜군들이 검불 속에 숨겨놓은 창과 갈고리에 찔려 다시 물속으로 빠진 것은 그 때문이었다. 거북선의 장점은 적진 깊숙히 파고들어 왜의 전열을 교란시킬 수 있는 점에 있었다. 병선(兵船)의 위를 덮어라. 이것은 웬만한 무장(武將)들도 낼 수 있는 아이디어이다. 하지만 그것의 형상을 거북으로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이순신은 역사를 충실히 공부한 만큼 거북선이 이미 존재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임진란 당시에는 물론 그런 배는 존재하지 않았다. 구선도설(龜船圖說)이라는 책 하나가 전할 뿐이었다. 그때 휘하 장수 하나가 거북선에 관한 상당히 구체적인 설계도를 그려서 들고 왔다. '천재'를 자극시킨 고마운 부하이다. 이순신이 그에게 구선에 관한 말을 먼저 건넨 것인지도 모른다.

부하는 고개를 일단 저었다. 배를 만드는 법이 까다롭고 자신이 그것을 할 수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거기다가 주위의 분위기도 문제였다. 이순신은 거북선을 만드는 문제를 놓고 내부토론을 벌인다. 대부분의 장수들은 코웃음을 쳤다. 부관 김운규가 가장 사납게 반대를 했다. "좌수사(이순신)가 철없이 우스꽝스런 짓을 한다"고 대놓고 씹을 정도였다. 다른 장수들도 “지금은 전쟁상황이다, 그럴 시간이 어디 있는가. 거북선 제조는 시간과 전력만 빼앗길 뿐 현실성이 없다”며 대부분이 말렸다. 이때 송희립과 녹도의 만호였던 정운이 한번 해보자고 말한다. 그들은 이순신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순신은 거북선 프로젝트를 독단으로 결정하지 않았다.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치면서, 중간 리더들을 설득한다.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필요하며, 거북선은 바로 왜군을 강타할 신무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내부의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이 이순신 창조경제의 용의주도한 점이다.

이순신의 설득 포인트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철갑의 필요성이다. 방어전의 불리함과 해전 자체의 숙련도 차이를 거론하며 적과 같은 방식으로 전쟁을 하면 백전백패를 할 것이라고 했다. 아군의 상황을 숨기면 일단 전쟁의 불리함을 극복할 수 있다. 둘째는 공포를 이미지화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라. 거북선은 용의 머리와 거북의 등을 가지고 있다. 불을 뿜는 용두는 적에게 공포감을 줄 수 있으며, 거북등은 절대로 뚫을 수 없는 난공불락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용과 거북은 전설적이고 신성한 동물이며 결코 죽지 않는다. 왜적들은 처음에는 저것이 무엇인가 놀라다가 나중에는 그것의 위력을 맛보고는 그것의 형상만 보여도 겁을 집어먹고 도망가거나 전열이 흔들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은 사람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용과 싸운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거북선이 지닌 실력에 더하여 거북선이 지닌 상징을 내세워 전투력을 두 배 세 배로 만드는 것이다.” 이같은 이순신의 전략은 맞아떨어진다. 처음에 거북선은 겨우 세 대였지만, 왜군은 거북선이 곧 이순신이며 그것은 무적의 괴물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이순신은 곧 거북선이었고 불을 뿜는 용이었다. 그의 전투력은 정세와 공간상황을 읽는 기민함에도 있었지만, 해전을 심리전으로 전환시킨 전략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그는 '불사의 장수'로 통했고, 왜군은 그의 이름만 들어도 주눅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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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이런 창의적 아이디어와 수평적인 리더십은, 그가 오랫동안 인문적 수업을 받았기에 가능했다는 지적이 있다. 그가 꼼꼼하게 기록한 ‘난중일기’ 또한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서 전쟁의 흐름과 문제적 상황을 성찰하는 철학적이고 인문적인 본능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무과에 합격하면서 인문적 소양은 접어두었다고 본인조차도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절대절명의 위기상황과 문제적 포인트에서 창의적이고 통찰적인 본능이 튀어나왔다. 내륙의 유학자 집안에서 자라난 그가, 바다에 나아가 해전에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물론 우선적으로는 그의 탁월한 능력과 품성에 기인하지만, 그것만큼이나, 스스로의 인문적 지식을 상황 분석과 전략에 활용하는 통섭적 센스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문화콘텐츠'를 체득한 그 바탕 위에서, 전쟁이란 상황을 타개하는 인문학적 전략을 창조해낸 것이다.

동시대 사람들조차도 이순신이 왜 위대한지 제대로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의 승전보만 보고 그의 불굴의 투지만 보고 그를 위대하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진짜 힘은 '창조적 역량'이었다. 거북선은 공포를 이미지한 문학과, 구선이라는 역사와, 대의가 승리한다는 유학 철학의 바탕에서 만들어졌다. 이 배는 단순한 전함이 아니라 문사철(文史哲)이 불을 뿜는 빼어난 창조경제의 모델이다. 아산에 있는 충무공의 옛집 앞에는 홍매화와 백매화가 나란히 꽃피어 있었다. 매화는 주자학의 꽃이다. 퇴계 이황의 꽃이며 남명 조식의 꽃이며 올라가서는 주희의 꽃이다. 세한을 뚫고나와 봄을 밀어올리는 불굴의 정신. 그 빼어난 향기와 아름다움. 거기에 자기 완성을 추구하는 유학의 꿈이 숨어있다. 이것이 이순신이며 이것이 거북선의 숨은 비밀이다.

* 창조경제 = 창조경제는 영국의 경영전략가 존 호킨스(John Howkins)가 'The Creative Economy'(2001)에서 처음 사용한 말이다. 호킨스는 창조경제를 "새로운 아이디어인 창의력으로 제조업, 서비스업, 유통업, 그리고 엔터테인먼트산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모든 활동"이라고 말하고 있다. 2013년 2월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최우선 국정운영 전략으로 창조경제를 내세웠지만, 새로운 생각의 틀에 대한 이해부족과 전시적인 활동으로, 국가적 에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한 상태다. 과다경쟁으로 치닫는 레드오션의 시장 한계와 교착 상태에 이른 기술의 한계를 그야말로 퀀텀점프할 대한민국 산업의 새로운 돌파구로 발전시키지 못한 채, 지역 순방지원 차원의 '경제 구호'에 그치는 정책적인 아쉬움을 남겼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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