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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꿀잠 포기한 여대생의 '한달 노숙' 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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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 지킴이로 나선 그녀, 노로바이러스·추위·몰이해와 싸운 날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 위치한 소녀상에 삼각형 천 3개를 늘어뜨린 모양의 괴불노리개가 달려 있다. 괴불은 연뿌리끝에 생기는 뾰족한 열매로 악귀를 쫓아준다고 한다. 괴불노리개는 영화 '귀향' 속 주인공이 지니고 다녔다. (사진 = 한연지 씨 제공)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 위치한 소녀상에 삼각형 천 3개를 늘어뜨린 모양의 괴불노리개가 달려 있다. 괴불은 연뿌리끝에 생기는 뾰족한 열매로 악귀를 쫓아준다고 한다. 괴불노리개는 영화 '귀향' 속 주인공이 지니고 다녔다. (사진 = 한연지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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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금보령 수습기자] “소녀상에 보면 괴불노리개가 걸려 있어요. 시민분이 오셔서 걸어두시곤 저희 모습이 괴불노리개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대학생 한연지(24)씨는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곁에서 3월 한 달 동안 노숙 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2월28일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 후 소녀상을 없애려는 움직임에 반대하기 위해서다. 소녀상을 지키는 모습이 ‘괴불노리개’와 꼭 닮았다. 괴불노리개는 위안부 피해를 다룬 영화 ‘귀향’ 속 주인공이 어머니한테 받은 것으로 나쁜 기운을 물리쳐 지켜준다는 부적 같은 존재다.
3월 소녀상 지킴이 한연지(24)씨가 소녀상 옆에서 활짝 웃고 있다. 소녀상에 달린 흰색 괴불노리개는 나쁜 기운을 물리쳐 지켜준다는 부적 같은 존재다.

3월 소녀상 지킴이 한연지(24)씨가 소녀상 옆에서 활짝 웃고 있다. 소녀상에 달린 흰색 괴불노리개는 나쁜 기운을 물리쳐 지켜준다는 부적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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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소녀상 옆에서 만난 한씨는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편의점 도시락을 뜯던 그는 “점심은 드셨어요?”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시계는 오후 2시 40분을 가리켰다.
한씨는 12·28 한일 위안부 합의를 계기로 농성장에 나왔다. 한씨는 “위안부 합의를 듣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같은 동아리 후배들과 얘기하다가 농성장에 나올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알고만 있었을 뿐 일본대사관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한 달 동안 혼자 노숙 농성을 이어간 데 대해 어려움은 없었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한씨는 “혼자가 아니었다”며 딱 잘라 대답했다. 3월 한 달 간 매일 노숙 농성을 한 건 한씨 한 명이지만 요일을 정해두고 여러 단체 소속 대학생들이 지킴이 역할을 함께한 것이다. 이날도 농성장에는 정도언(23)씨와 이모씨가 나와 있었다.

지킴이들은 화장실을 갈 때나 잠시 씻으러 갈 때 교대로 농성장을 지켰다. 자리를 비우면 경찰들이 물품을 수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씨는 “비가 왔던 날 이불 위를 차량용 비닐커버로 덮어뒀는데 안에 습기가 차서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보이지 않았던 상황이 생겼다. 그때 언니 한 명만 있었는데 경찰이 와서 안을 확인하고 갔다”며 “아무도 없었다면 어떤 일이 있었을지 모르겠다”고 얘기했다.
시민들도 함께였다고 한씨는 덧붙였다. 근처 식당에서 쓸 수 있는 식권을 주시는 분, 이불을 비롯한 필수품을 지원해주시는 분, 힘내라고 응원해주시는 분 등 지킴이들을 도와주신 시민들 얘기다. 인터뷰 중에도 “힘내세요!”, “고생이 많으시네요”, “파이팅!”을 외치며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한씨는 “감사합니다”라고 답하기 바빴다. 그는 “농성장에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위안부 합의 무효를 원하는 게 느껴진다”고 말하며 웃었다.

한 달 동안 늘 웃을 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간혹 엉뚱한 얘기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화가 난 적도 있었다. 한씨는 “한 할아버지가 위안부 합의는 잘 된 일이라며 타협할 줄도 알아야 된다고 하셨다. 게다가 위안부 피해자가 생긴 건 우리나라 힘이 약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씀하셨다”며 “듣는데 너무 화가나 바로 반박했다”고 말했다.
3월 소녀상 지킴이 한연지(24)씨가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3월 소녀상 지킴이 한연지(24)씨가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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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약해졌다. 지난주엔 노로 바이러스에 걸려 고생했다. 한 시민이 사준 굴보쌈을 먹었다 탈이 난 것이다. 여러 명이 먹었는데 한씨를 포함해 단 두 명만 노로 바이러스에 걸렸고 나머지는 멀쩡했다. 한씨 옆에 있던 이모씨는 “노숙 농성을 오래 하다보니 면역력이 약해져서 그런 것 같다”고 걱정했다. 구토를 반복하던 한씨는 결국 병원에 가서 수액주사를 맞았다.

한씨의 바람은 더 많은 대학생들이 소녀상 곁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는 “한 명이라도 소녀상을 지키고 있다면 대학생들 마음에 와 닿는 무언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며 “많은 이들이 이곳으로 오게끔 하려고 3월 한 달 동안 나와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이 바람이 더 간절해졌다. 올여름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는 재단 설립이 본격 진행된다는 일본 산케이신문의 22일 보도 때문이다. 재단 설립과 함께 소녀상 철거가 이뤄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 많은 지킴이들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 달을 혼자 지키면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30명이 모이면 하루씩 지켜도 한 달이 된다”며 대학생들의 지킴이 참여를 촉구했다.

한씨는 4월2일까지 농성장을 지키고 고향으로 돌아가 6일까지 쉴 예정이다. 7일에 다시 농성장으로 온다는 그에게 더 쉬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자 “7일은 농성 100일 되는 날”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앞으로도 농성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는 그였다. “3월이 지나도 농성은 계속 이어질 거고 지금처럼 매일은 아니지만 저도 4월에 나올 거예요. 위안부 합의 무효가 될 때까지 소녀상을 지키고 싶어요”.



금보령 수습기자 gol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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