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수사검사 "감형 위해 미인도 언급? 어불성설"
평론가 "권씨, 신빙성 없어 애초에 믿지 않았다. 미인도, 다른 위작자 작품 가능성"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미인도'가 자신이 위조해 그린 그림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해온 권춘식씨(69)가 기존 입장을 번복했다. 25년간 이어진 '미인도 위작시비'는 끝없이 미궁으로 흘러가고 있는 형국이다. 고 천경자(1923∼2015) 화백은 생전 미인도가 자신의 그림이 아니라고 거듭 밝혔다. 지난해 천 화백의 별세 이후 유족들은 문제의 그림에 대한 재감정을 요구하며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송 대상자인 국립현대미술관이 여전히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입장을 보이는 가운데, 권씨의 말바꾸기가 미술관 측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 줄지는 의문이다. 미인도가 권씨 아닌 다른 위조범이 그린 그림일 가능성, 권씨가 입장을 바꾸며 했던 이야기의 논리적 결함 등이 제기되고 있다.
권씨는 3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천경자 미인도는 생각해 보니 내가 그린 그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1999년 당시 검찰 수사과정에서 미인도 위작 여부에 대한 확인을 요구받았을 때, 혹시 수사에 협조하면 감형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우물쭈물하다가 시인했고, 그것이 굳어졌다"며 "여러 위작을 만들어 확신이 없는 가운데 그렇게 말한 것이다. 참담한 마음으로 경솔했던 점 깊이 사죄드린다"고 했다.
지난 1995년 천 화백 생애 마지막 개인전을 열었던 호암갤러리 큐레이터였던 최광진 미술평론가(54)는 "권씨의 입장 번복과 미인도 진위 감정은 별개로 따져야 할 문제"라고 강조하며, "권씨가 미인도를 그렸다는 말을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 미인도는 다른 위작자가 그린 것이라고 봤다. 권씨가 최근 SBS 방송을 통해 재연한 건 미인도보다는 훨씬 묽게 그렸기도 했고, 위작과 관련한 기억이 명확하지 않았다. 미인도 크기는 4호인데, 계속 8호라고 얘기하기도 했다"고 했다.
최 평론가는 이어 "1995년 천 화백 전시를 준비하면서 작품들을 오랜 시간 접할 수 있었다. 그는 생전 작품 거래나 전시를 많이 하지 않았다. 화랑들도 천 화백의 작품을 길게 볼 기회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전문가 집단에서 당시 열흘만에 감정을 끝내고, 진품으로 몰고 갔다. 상당히 허술하다고 본다"며 "천경자 평전을 2000년대 초반부터 준비하고 있다. 평전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 이 안에는 그간 모아온 자료들을 토대로 미인도가 위작임을 밝히는 증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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