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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시대]'먹방의 진원지'는 백종원 아닌 하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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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의 사회심리학 - 혼밥과 다이어트가 '먹는 행위 엿보기' 폭발시켜

먹방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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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혼자 사는 20대 취업준비생 A씨는 최근 이른바 '먹방(먹는 방송)'에 푹 빠져 있다. 셰프들이 출연해 요리를 하는 프로그램부터 숨겨진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까지 빠뜨리지 않고 시청하는 것도 모자라 재방송도 챙겨보고 있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음식을 먹는 장면이 나오면 리모컨을 멈춘다. 하다못해 인터넷 방송을 보면서도 푸짐하게 차린 음식을 말끔히 먹어 치우는 진행자들에게는 아낌없는 '별풍선'을 날린다.

#2. 30대 직장인 B씨는 최근 회사 근처 식당을 지나가다 깜짝 놀랐다. 평소 점심에 순댓국 등을 즐겨먹던 허름한 곳이었는데 갑자기 손님이 늘어나 차례를 기다리는 줄까지 길게 늘어서 있었던 것. B씨는 아쉬운 마음에 발걸음을 돌리면서도 평소 무난하다고 생각했던 그 식당의 국물 맛이 왠지 더 진하고 맛깔스럽게 기억됐다. B씨는 줄을 서더라도 조만간 그곳의 순댓국을 다시 먹기로 결심했다.
바야흐로 '먹방'의 전성시대다. 공중파, 케이블 가리지 않고 먹방이 예능 프로그램의 대세로 떠올랐고 이 같은 방송에 출연하는 셰프들이 운영하는 식당은 문전성시를 이뤄 수개월치 예약이 꽉 찼다고 한다. 또 미식을 콘셉트로 한 프로그램에 소개된 노포들에는 한 번에 손님들이 몰려 식사 시간을 비켜서 찾아도 대기표를 받기 일쑤다. 시청자들은 안방에서 먹방에 탐닉하고 시간이 나면 TV 프로그램이 소개한 식당을 찾아 나선다. 어느새 먹방은 단지 방송가의 트렌드가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도대체 왜 먹방에 열광하는 것일까?

◆최근 먹방, 과거와는 다르다= 최근 먹방을 얘기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는 요리연구가 백종원이다. 외식업체를 운영하는 그는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음식 조리법을 알려주고 음식 문화에 대한 소소한 지식을 전하면서도 눈앞의 음식을 그야말로 맛있게 먹는다. 하지만 백종원 이전에도 먹방은 있었다. 인터넷 등에서 본격적으로 '먹방'이라는 말이 쓰인 것은 2010년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영화 '황해'에서 배우 하정우가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치우는 장면이 화제가 되면서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그 이전에도 여행 관련 프로그램에서 세계 각지의 음식을 소개하고 먹는 장면은 빠지지 않는 킬러 콘텐츠였다. '6시 내고향'류의 방송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도 각 지역의 제철 재료를 수확하고 조리해 먹는 것이었다.

방송가에서는 과거와 다른 최근 먹방의 트렌드 중 하나로 '먹는 것'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든다. 예전에는 여행, 요리, 식당 등과 관련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정보보다는 먹는 행위 자체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종원 (사진=방송화면 캡처)

백종원 (사진=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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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허기, 먹방 열풍 배경= 방송에서 타인의 먹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고 열광하게 된 배경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정서적 허기'다. 실제 배고픔, 육체적 허기와는 다른 정서적 허기가 먹방 열풍의 원인 중 하나라는 얘기다. 정서적 허기는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로저 굴드가 탐식 환자들에 대한 심리 치료를 하면서 주창한 개념이다. 그는 "화가 날 때, 우울하거나 불안할 때, 지겹거나 외로울 때, 갈등이 있을 때 정서적 허기가 생길 수 있다"며 "불안감을 느끼거나 어려운 환경에 놓인 사람들은 이런 초조감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기 위해 음식을 탐하게 된다"고 했다.

이 같은 정서적 허기를 우리 사회에 적용하면 먹방 열풍의 이면이 보인다. 경제적으로는 갈수록 심해지는 청년실업과 양극화, 노인 빈곤 등이 구성원들을 절벽으로 내몰고 있고 출구 없는 생존 경쟁에 대한 두려움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자살률 1위라는 사실이 대변하는 우울한 사회 분위기가 정서적 허기를 느끼게 하는 요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1인 가구의 증가도 정서적 허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 15.5%에 그쳤던 국내 1인 가구 비율은 2010년 23.9%로 급증했으며 2020년에는 1인 가구 500만 시대를 넘어 600만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혼자 집에서 밥을 먹는 경우가 많은 이들이 TV 속 먹방을 보면서 함께 식사를 한다는 정서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손영화 계명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국심리학회 웹진 기고 글을 통해 먹방 열풍에 대해 "인구통계학적 변화로 인해 혼자 살고 있는 인구가 급격히 늘고 있는 추세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혼자 먹기 위해 밥을 하는 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닌 상황 때문에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혼자 밥을 먹는 고독함을 해소한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정우 (사진=방송화면 캡처)

하정우 (사진=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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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시대, 먹방은 생존 위한 몸부림= 현대인의 다이어트 풍속도도 먹방 열풍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먹을거리가 풍부한 시대에 음식 섭취를 줄이는 게 미덕으로 여겨지는 모순된 상황에서 우리 사회 구성원 중 상당수는 꾸준히 다이어트를 시도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최근 발간한 '2014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만 19세 이상 성인의 비만 비율은 31.5%였으며 이중 최근 1년간 본인의 의지로 체중을 줄이려고 노력했던 이들은 63.5%였다. 여성의 다이어트 시도 비율은 71.0%로 더 높았다. 음식을 절제하는 이들에게 먹방은 다이어트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일종의 '해방구'일 수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를 생존 본능과 결부시킨 주장도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찰스 스펜스 영국 옥스퍼드대 실험심리학과 교수팀은 영양가 높은 음식을 얻으려는 생존 본능 때문에 음식 이미지를 즐겨 본다는 연구 결과를 학술지 '뇌와 인지' 온라인 판에 실었다. 연구팀에 따르면 뇌는 영양가 높은 음식을 찾도록 돼 있고 시각 정보는 이를 판단하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우리는 시각적으로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갈구한다. 다이어트에 지친 현대인이 시각을 통해서라도 보다 영양가 있고 맛있는 먹을거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음식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이에 대해 손영화 교수는 "먹방, 쿡방 열풍은 사회경제적인 환경 변화와 소비 트렌드의 변화, 이로 인한 소비자 욕구의 변화 등 여러 각도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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