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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만세' 삼둥이 할머니의 피

최종수정 2016.08.09 07:57 기사입력 2016.03.02 07:07

삼일절 맞아 살펴본, '의혈 가문' 김좌진-김두한-김을동의 기억

사진 = 풍문여고 졸업식에 아버지 김두한과 함께한 김을동, 김을동 의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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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얼굴이 곧 이름이자 명함이다. 그러나 김을동 의원은 배우이기에 앞서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과의 관계로 호명되어 왔다. 장군의 손녀, 협객의 딸, 스타의 어머니, 이제는 삼둥이 할머니까지, 그녀를 수식하는 단어는 곧 격동의 한국사 속에 살아온 한 가족이 겪은 수난의 흔적이 아니었을까. 3선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그녀의 단단한 출사표만큼이나 지역구에 나부끼는 선거 현수막 맨 윗줄, 김좌진 장군의 표정에선 조국의 독립을 꿈꾸던 결연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사진 =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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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가치를 중시했던 김좌진
김을동 의원의 조부인 김좌진 장군은 고향인 홍성의 부호 가문에서 태어나 일찍이 개화한 스승 밑에서 계몽의식과 항일정신을 기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열일곱 나이로 민족운동을 시작하면서 집 안에 있던 30여 명의 노비를 해방하고, 소유하고 있는 토지 또한 이들에게 분배했다. 인간 평등을 몸소 실천했던 그는 서울에서 대한제국 무관학교를 졸업한 뒤 다시 고향에 내려가 호명학교를 설립했다. 일찍이 국권 회복을 위해서는 젊고 유능한 인재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달은 그가 고향에서 직접 인재양성에 나선 것이다. 김좌진은 세상을 바꾸는 데 있어 사람의 가치가 중요함을 실천을 통해 보여주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김좌진은 위장회사를 통해 군자금을 모으고 다른 한 편으론 외국의 독립운동조직과의 연락거점으로 삼으며 활동하다 일본 경찰에 발각돼 서대문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19년 3.1운동 이후 만주 지역의 독립군 항쟁이 활발해지자 김좌진은 대한군정서에 참여, 본격적으로 항일무장투쟁의 병력과 간부를 양성하는데 투신했고, 그 후 1920년 독립군 부대와 함께 일본군을 상대로 청산리 일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여 큰 승리를 거뒀다.

승리의 기쁨도 잠시, 독립군의 계파 분열로 인해 만주로 이동한 김좌진은 지속해서 무장투쟁을 전개하며 지역 동포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활동하던 중 고려공산당 청년회원인 박상실의 총탄을 맞고 순국하는데, 마흔한 살의 나이에 피살된 그의 유언은 “할 일이 너무도 많은 이때 내가 죽어야 하다니, 한스럽다”였다.

사진 = 김두한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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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심의 두 얼굴, 김두한

살면서 아버지 얼굴을 단 한 번 봤음에도, 평생을 장군의 아들로 불린 김두한 전 의원의 삶 또한 세파를 온몸으로 맞은 풍운의 기록이다. 독립운동에 투신한 아버지의 부재, 가출한 어머니를 대신해 외할머니 손에 성장한 그는 약관의 나이에 종로 주먹계를 평정하며 유명인사가 됐고, 해방 직후엔 조선 공산당 전위대장을 역임했으나, 부친의 살해범이 공산당임을 알게 된 후 전향하여 우익 청년활동에 뛰어들었다. 좌우합작 및 남북협상을 방해하는 과정에서 과격한 행보를 이어오던 그는 이후 자유당의 독재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는 등 좌우를 종횡무진 활동하는 정치노선을 견지했다.

이후 1954년 3대 국회의원, 1965년 6대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1966년엔 내란음모혐의로 구속되었으나 국회에서 석방결의안이 나오며 무죄선고를 받는 등 위기를 맞았다. 그해 김두한은 9월 한국 비료 주식회사의 사카린 밀수사건에 대한 정경유착을 비판하며 국회 발언대에서 오물을 투척해 의원직을 잃고 구속기소 되었다. 일관된 정치적 신념보다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확신을 갖고 행동한 그의 행보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나, 혼란스러운 그의 궤적이 곧 대한민국 건국 직후의 혼탁했던 근대사를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자 역사의 폐부다.

사진 = 김을동 의원 선거 현수막, 온라인 커뮤니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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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 2대를 딛고, 최초 부녀 국회의원

배우로 대중에게 익히 얼굴을 알린 김을동 의원은 자신의 성격을 과거 인터뷰에서 “외향적이다, 활달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합니다.”고 답한 바 있다. 부친과 조부의 그늘에서 쉽게 정계에 진출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녀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종로구에 출마했다 낙선한 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친박연대 비례대표로 당선되며 김을동은 최초의 부녀 국회의원이 됐다.

그녀의 아들은 대를 이어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송일국으로, 드라마 ‘주몽’의 주인공을 맡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라 모자 배우로 유명세를 떨쳤다. 이후 2008년 결혼발표 당시 상대가 법조인으로 알려져 세간의 주목을 받았는데 현재 인천지방법원 판사로 재임 중인 정승연씨가 그 주인공. 독립운동가에서 부녀 국회의원을 거쳐 판사 며느리에 이르는 화려한 가족구성에 보태 송일국이 2012년 낳은 세쌍둥이 대한, 민국, 만세는 2014년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아빠와 함께 등장하며 일약 국민 스타로 떠올랐다.

사진 = 배우 송일국과 아들 대한, 민국, 만세,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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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의 가족사

대중의 관심이 집중될수록 논란도 생겨나기 마련. 송일국의 매니저가 김을동 의원의 보좌관이라는 의혹 기사에 여론의 뭇매를 맞았으나 이내 김 의원의 며느리인 정승연 판사가 나서 ‘해당 매니저는 국회 보좌관이 아닌 인턴이었으며 급여 역시 사비로 지급했다’고 해명하고 나서야 논란을 잠재울 수 있었다.

“사람은 근본 하나만 보면 되는 거야!” 9년 전, 주말드라마에 꼿꼿한 할머니로 등장한 김을동이 며느릿감을 두고 고민하는 가족에게 일갈한다. 일제 강점과 독립운동, 해방과 건국 등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유전의 가족사를 써온 김을동 의원의 가계가 남긴 많은 흔적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선거를 앞두고 그녀의 현수막에 등장한 조부와 부친, 아들의 사진을 놓고도 비판의 여론이 거듭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없을까?

정치인은 정치활동과 능력으로 평가해야 한다. 그녀 뒤 선친들의 업적과 과오, 그녀 앞 아들과 손주의 명성과 인기는 내려놓고 정치인으로서의 그녀를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된 3.1운동 97주년을 맞아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이름 없이 사라지고, 어려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 현재, 가장 유명한 그녀의 이름과 삶을 떠올리면서 5대에 걸친 수난사를 살펴보았다.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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