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넓은 의견수렴 미흡, 정무적 감각 의문…'정치소품' 자처, 인권옹호 변협 사명 역행
변호사들은 느닷없는 '대한변호사협회(회장 하창우)'의 테러방지법 찬성의견서 소식을 듣고 어리둥절해 했다. 변협 회원을 상대로 폭넓은 의견수렴 절차도 없이 회장과 일부 임원진의 '긴급회의'로 결정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변협은 2만 변호사를 대변하는 '법정 변호사 단체'다. 판단의 무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단체가 "변협도 테러방지법이 인권대책을 갖췄다는데 왜 반대하느냐"는 여당 논리의 '정치 소품'을 자처했다. 변협의 이번 행동은 '정무적 감각'에 대한 의문을 낳게 한다.
테러방지법은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이다. 섣불리 여당 손을 들어주면 정치적 부담은 변협이 떠안게 된다. 폭넓은 의견수렴 절차라는 안전장치도 없이 서둘러, 그것도 '몰래' 의견서를 전달한 배경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거래나 어떠한 압력에 따른 행동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변협 의견서는 이미 세상에 공개됐다. 정치적 부담과 후폭풍을 감당하는 것은 변협의 몫이다. 변협의 권위는 '변호사 배지'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국민이 변협 판단을 경청하는 배경이 무엇이겠는가. 하창우 회장은 취임사에 담긴 약속을 실천하고 있는지 곱씹어보기 바란다.
"우리의 권익을 내세우기에 앞서 인권옹호 실현이라는 사명을 되새기고 국민 앞에 겸허히 고개 숙이겠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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