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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엔 꿩수저와 닭수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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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 '꿩 대신 닭'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필요한 것에 걸맞거나 마땅한 것이 없을 때, 그보다 조금 못하지만 그런대로 쓸 수 있는 것을 찾아 쓰는 것을 가리켜, 꿩 대신 닭이라고 표현한다. A급이 필요한데 그게 없으니 B급을 쓰는 것인데, 이 말 속엔 B급에 대한 아쉬움도 있지만 그거라도 있어서 고마운 기분도 숨어있다.

옛사람들은 꿩을 하늘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꿩과 닭은 비슷하게 생겼으며 날개달린 짐승으로 땅 위를 질주하는데 능한 점에서도 닮았다. 꿩은 숲에서 사는 닭이며, 닭은 집에 들어와 길들여진 꿩인 것처럼 여겨진다. 물론 꿩은 꿩일 뿐이며 닭은 닭일 뿐인 이종(異種)의 동물이다.
꿩과 닭이 왜 대체재가 되는 것일까. 마침 명절 무렵인 지금에 딱 알맞은, 속사정이 있다. 꿩고기는 맑고 감칠 맛 나는 국물을 내는데 쓰였다. 특히 떡국 국물을 내는데에는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 귀한 집에서는 설이나 추석이 되면, 포수를 풀어 꿩을 잡아 떡국 국물을 만들었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집에선 해마다 명절마다 그럴 엄두를 못낸다. 그러니 꿩보다는 못하지만 그 비슷한 국물맛을 내는 닭고기를 쓴다. 닭은 집에서 늘 키우는 것이 잡기에 만만하다. 그래서 생긴 말이 꿩대신 닭이다. 꿩을 못 써서 아쉽긴 하지만 닭이라도 없었다면 떡국 국물맛을 무엇으로 내랴. 숟가락을 들고 떡국 맛을 보며 가난한 옛사람들은 입버릇처럼 저 말을 중얼거렸을 것이다.

비록 빈한하여 제대로 살지는 못하나 그래도 그 가난을 가려줄 것이라도 있으니 고맙게 생각하자. 그런 마음으로 국물을 떴다. 꼭이 다 갖춰 살 수야 있으랴. 욕심껏 살고 희망껏 먹고 으스대며 사는 일이야 은근히 바라는 바지만, 그게 안되는 현실에서 차선에 만족하고 살아가는 지혜가, 저 짧고 간결한 말 속에 담겨있다. 요즘 슬픈 유행어 중에 금수저 흙수저란 말이 있는데, 떡국만 보자면 꿩수저 닭수저가 있었고, 닭수저의 인생긍정이 저 속담 속에 푼푼이 국물맛을 내고 있는 셈이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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