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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그릇과 여당의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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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사건읽기 뉴스日記'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난향천리 인향만리(蘭香千里 人香萬里)란 말이 있다. 난초의 향기는 천리를 가고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는 뜻이다. 하지만 오늘 어떤 난초 하나는 정치적 승강이 사이에 떠밀리며 '향기 없는 나라'를 웅변했다.

2일 청와대에 전달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의 난(蘭) 소동 얘기다. 예순 네번째 생일을 맞은 박근혜대통령에게 야당의 리더가 오전에 축하 난분을 보냈는데, 청와대에서 세 차례나 받기를 거절했다. 그런데 오후에 태도를 바꿔 다시 받는 촌극이 벌어진다. 그 사이에 포털과 SNS에선 청와대의 '비좁은 그릇'에 혀를 차는 댓글과 의견글이 쏟아졌기에, 그런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오전에 사양하기로 한 판단이 현기환 정무수석이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주요 핵심법안이 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축하 난을 받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대통령이 이 소식을 듣고 크게 질책을 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국무회의 중이라 이와 관련한 보고를 못 받았다는 것이다. 야당 대표의 자격으로 대통령에게 보낸 생일 축하 난을 정무수석이 독자적인 판단으로 받지 않을 만큼, 청와대 내의 자율성이 보장되어 있다고 봐야 하나. 그렇다고 한다면 이건 정무수석의 월권으로 느껴져 개운찮다. 대통령이 업무 중이라서 정무수석이 대신 판단했다는 설명도 군색하다. 그런 사안이라면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려 물어본 뒤 받을지 말지를 결정하겠다고 전하면 될 일이었다. 이래저래 살펴봐도 대통령의 모양새를 구길 수 있는 상황을 살짝 가려주려고 '월권'까지 감수하면서 방어를 했다고 보는 게 그럴 듯 하다.

오늘 오전 여당은 작심하고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공격하는 '자료'를 냈다. '권력과 더불어 36년 김종인의 말바꾸기'라는 제목을 붙였다. 야당의 김종인 비대위 체제에 흠집을 내려는 전략일 것이다. 새누리당 권성동 전략기획본부장은 "국보위, 민정당, 민자당, 새천년민주당을 오가며 장관과 국회의원을 하며 권력의 양지만 좇은 철새정치인"이라며 김종인에게 독설을 퍼부었다. 노태우 정권시절에 경제수석을 하면서 2억여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들먹였고 2012년 새누리 비대위원장과 2016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을 오가며 맡은 일도 꼬집었다. 다른 진영으로 간 '과거의 동지'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은, 김종인의 입지를 좁히는 것이 아니라, 여당의 옹색한 그릇과 실밥이 터진 듯한 누추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 보는 이가 더 민망하다.

하루 사이에 일어난 두 가지 에피소드는 대통령과 여당의 '그릇'을 보여주는 씁쓸한 예화이다.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지만, 대통령은 국가 지도자이며 여당은 이 나라를 이끄는 주류 정당이다. 박대통령의 핵심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의 두뇌가 야당으로 간 사실이 황당하고 뼈아프다 할지라도, 혹은 야당이 국회에서 법안을 쥔 채 태업을 벌이는 행위가 밉고 야속하더라도, 대통령과 여당은 품격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 그 품격이 나라의 기품이 아닐까.이 땅의 큰 수레가 너무 가볍고 얕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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