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김현희기자, 북새통 공항에서 임시숙소 쪽잠의 밤까지
상황을 미리 알았더라면 렌터카를 반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항은 그야 말로 난민들의 천지로 변해 있었다. 모두가 패닉이었다. 항공편은 전면 결항이었다. 회사의 중요한 출장으로 오늘 귀환하지 않으면 큰 사업이 차질을 빚는다는 얘기, 6개월된 임산부가 걱정된다는 얘기, 제주에서 내일 결혼식을 갖는데 난리가 났다며 아우성치는 소리. 아마도 결항사태가 오래 갈 수 밖에 없을 거라는 비관어린 탄식까지. 오전 11시30분 에어부산 항공편을 이용해 부산으로 향할 예정이었던 20대 한 여성은 무려 5시간 동안이나 비행기를 탄 채 대기했다가 돌아왔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소란스런 말들이 귀를 쟁쟁거리며 울리는 가운데,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 일행도 이렇게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다. 우선 당장 하룻밤을 묵을 숙소가 문제였다. 그런데 택시는 부를 수도 없었고 차편이 모두 끊겨 꼼짝할 수 없었다. 친구와 나는 백방으로 지인을 통해 전화로 SOS를 쳤다. 갑작스럽게 제주공항에 갇혀 있는 우리를 구해줄 사람이 쉽게 나설 리 없었다. 천만다행으로 회사의 한 선배가 제주에 있는 한 언론사 후배와 연락이 닿아, 그의 도움을 받게 됐다. 그가 공항에 찾아와 우리를 숙소까지 태워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도 탑승객들의 노숙숙소로 변한 2층에서 선잠을 자야했을 것이다. 공항에서 밖으로 빠져나갈 택시나 버스가 아예 오지 않아 3시간 넘게 기다린 사람도 있다고 했다.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에 따르면 23일 출발 142편, 도착 121편 등 263편이 결항되고 출·도착 78편이 무더기 지연됐으며, 24일 정오까지 예정된 항공편 모두가 결항될 예정이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제주도는 어제 오후부터 공항 3층 대합실에 안내데스크를 설치해 교통편(콜택시·렌트카)과 숙박시설(숙박·식당·찜질방·사우나) 등을 안내하고 있으며,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통역요원도 배치했다. 전세버스 30~40대를 긴급 투입해 신제주(신제주로터리-제원아파트)와 구제주(터미널-시청) 구간을 운행하고 있으며, 공항버스(삼영교통)도 배차시간을 단축해 돌리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제주전세버스운송사업조합의 협조로 전세버스를 계속해서 투입하고 있다면서 "관광공사와 관광협회에서 숙소를 섭외해 이용객들에게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에 따르면 이날 제주에서 다른 지방으로 떠나려던 이용객은 총 3만4000명, 제주로 오려던 이용객은 3만4000명 등 총 6만8000명으로 집계됐다.또 24일 공항 이용객 예정인원은 7만6000명(출발 4만명, 3만6000명), 25일 예정인원은 7만1000명(출발 3만6000명, 도착 3만5000명)으로 확인됐다.이로써 23일부터 25일까지 사흘간 제주공항을 이용하는 총 인원은 21만5000명에 이른다. 하지만 24일 강한 바람과 함께 낮 최고기온이 영하권에 머무는 등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가 예고돼 항공기 정상 운항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편 기상청은 23일 오전 11시를 기해 제주도 전역에 한파주의보를 발효했다. 한파주의보는 2009년 3월13일 이후 약 7년만이다.
김현희 기자 faith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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