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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희의 전시포커스]그 시절 민중의 붓, 응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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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 치열했던 리얼리즘 미술의 복권

신학철, 한국현대사-초혼곡, 1994, 캔버스에 유채, 244×122cm

신학철, 한국현대사-초혼곡, 1994, 캔버스에 유채, 244×12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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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철, 갯펄 아낙, 1975, 캔버스에 유채, 100x72cm

권순철, 갯펄 아낙, 1975, 캔버스에 유채, 100x7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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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한국현대미술사조의 양대산맥은 '단색화'와 '민중미술'이다. 최근 국내외 미술시장에서는 '단색화'가 판을 주도하는 추세다. 단순하면서도 조형적인 패턴이 스며든 단색화는 철학적 사유의 추상화로 각광받고 있다. 단색화가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면, 그 대척점엔 이른바 '민중미술'을 포함한 '리얼리즘 미술'이 있다. '현실을 담은' 예술이다.

일제강점기와 광복을 거치며 1970년대까지 우리 미술은 미술대학 교수진과 '국전(國展)'이라는 제도를 중심으로 화단의 권위가 형성됐다. 국전은 지난 1981년까지 문화예술진흥원이 매년 실시한 국내 최대 미술전람회다. 하지만 군부독재 시대의 예술가들은 예술에서 현실이 배제돼 있음을 반성하기에 이른다. 1979년에 태동해 1980년 창립전을 한 미술동인 '현실과 발언'이 그 시작이었다. 1985년에 젊은 작가들이 결합해 준비한 기획전 '20대의 힘'에선 급기야 작품이 강제 철거당하고, 작가 열아홉 명이 연행되기도 했다.
현실참여적이며 민주화운동과 궤를 같이 하는 미술을 언론은 '민중미술'이라 불렀다. 정부의 탄압이 심해지자 진보적인 미술인들은 '민족미술협의회(민미협)'란 이름으로 여러 소그룹 미술운동을 합쳐나갔다. '민중'이란 말 자체가 탄압의 대상이자, 불온하다는 이미지가 덧씌워졌기 때문이다. 이후 미술운동은 민주화과정에서 현장미술, 노동미술로 퍼져 나갔다.

서양 리얼리즘의 역사를 살펴보면 1930년대 디에고 리베라 등을 주축으로 한 멕시코 벽화운동이 있다. 동양에서도 같은 시기에 중국의 대문호인 노신이 상해에서 벌인 목판화운동이 있다. 1960년대에는 미국 시카고에서 흑인 인권을 주제로 한 벽화운동이 있었다. 거리의 예술, 반항아들의 낙서인 '그래피티'도 리얼리즘 미술로 확장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올해 들어 우리 현대사와 맥락을 같이한 리얼리즘 미술이 재조명되고 있다. 그 처음은 '나의문화유산답사기'로 잘 알려진 유홍준(67) 명지대 석좌교수가 자문을 맡은 '리얼리즘의 복권' 전시다. 오는 28일부터 한달여 동안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가나인사아트 전관을 작품 100여점이 메울 예정이다. 참여 작가는 권순철(72), 신학철(72), 민정기(67), 임옥상(66), 고영훈(64), 황재형(64), 이종구(62), 오치균(60) 등 여덟 명이다. 전시를 통해 우리 미술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한국현대사 뿐 아니라 미술에서도 중요한 전환기였던 1980~1990년대의 리얼리즘 미술을 다시 살펴본다는 취지다.
민정기, 벽계구곡도, 2011, 캔버스에 유채, 157.5x326cm

민정기, 벽계구곡도, 2011, 캔버스에 유채, 157.5x32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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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옥상, 귀로, 1984, 종이부조에 먹, 채색, 180x260cm

임옥상, 귀로, 1984, 종이부조에 먹, 채색, 180x26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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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구, 이씨의 여름, 1991, 부대종이에 아크릴릭, 150x210cm

이종구, 이씨의 여름, 1991, 부대종이에 아크릴릭, 150x21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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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에서 전시를 소개하기 위한 모임이 있었다. 유홍준 교수는 "1980년대 제도권 밖에 있었던 작가 중 상당수가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민중미술과 관련 있었고, 그중에는 이에 관계없이 묵묵히 리얼리즘을 고수한 작가도 있었다"며 "고뇌의 시대이기도 했던 이 시기에 이들은 제도권 미술에선 자신을 표현할 수 없었다. 한국사회의 한 시대를 휩쓸었던 사조였지만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하던 그 예술적 진실성과 가치가 이번에 복권되길 바란다"고 했다.

권순철은 개펄 아낙, 자화상 등 인물과 풍경의 형상을 해체시켜 현실의 근원을 화폭에 집중시킨다. 신학철은 특유의 극사실주의와 콜라주 기법으로 당대의 모순을 표현한다. 민정기는 추상에서부터 구상, 키치(kitsch), 그리고 실경 산수를 새롭게 해석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사회적 현실과 소외를 드러낸다. 임옥상은 격변하는 시대의 부조리한 현실을 의식의 각성과 시각의 혁신을 그림에 담아 보여줬고, 이종구는 급격한 산업구조의 변화로 인해 붕괴된 농촌을 배경으로 삶의 애환, 분노, 좌절, 희망 등이 얽힌 현실을 극사실적 표현으로 담아냈다. 오치균은 어두운 지하철 풍경이나 슬럼가의 노숙자,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인체를, 황재형은 무거운 노동과 삶의 무게를 지닌 탄광촌의 광부를 주제로 해 현실을 반영한다. 고영훈의 경우, 인간의 문명을 상징하는 동서양의 고서(古書)들 위에 자연의 상징인 돌 혹은 시계와 삽 등의 오브제를 융합시켜 실물의 재현을 넘은 독특한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유 교수는 1986년 민미협 주도로 문을 연 상설전시관인 '그림마당 민'의 운영위원장으로 일했다. 그는 그곳에서 '민중미술'이라 불리는 그림들을 홍보하고 팔기 위해 애썼다. 때론 이런 그림들이 예술성이나 작품성이 없는 조악한 그림으로 치부되기도 해 속상한 적도 많았다고 한다. 그는 "비판의 대상은 조형적으로 난폭한 작품들이지만 어떤 미술 사조를 보더라도 '못 그린 그림'은 존재했다"며 "'지저분하고 거칠다'는 모함도 많이 받았다. 멸시받은 것이 억울하기까지 하다. 사실 수준 높은 그림들이 많다. 작품을 보고 이야기 했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리얼리즘 작가들 대부분이 전업화가로 '백수'였다. 당시에는 화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번 전시 작가 중 임옥상을 제외하면 대부분 사회성도 없는 이들이다. 하지만 모두가 테크닉은 귀신같았고 정확하게 그리는 이들"이라고 했다. 유 교수는 특히 이종구 화백을 예로 들며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날 적에 그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정말 농사꾼의 멋이 그대로 살아나게 진국으로 그렸다"고 했다.

유 교수는 이어 "단색화 작가들이 현재 80대가 대부분이라면 60대가 중심이 된 리얼리즘, 민중미술 작가들의 작품들도 소개해야 할 때다. 한국미술의 다양성과 매력을 알려야 한다"면서 올해 판화로 유명한 오윤 작가 서거 30주기를 맞아 오는 8월 민중미술을 주제로 한 기획전을 열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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