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超)저유가 시대…산업계 득실계산 분주
[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국제유가가 배럴당 30달러대인 초(超)저유가 시대에 진입하면서 국내 산업계도 업종별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항공·해운업 등 유류비 비중이 높은 업종은 원가 절감으로 실적 개선을 기대하는 반면 조선·건설업 등 경기에 민감한 산업군은 저유가에 따른 시장 위축으로 실적 악화를 걱정할 처지에 놓였다.
저유가의 직격탄을 맞은 곳은 조선업계다. 저유가 흐름이 지속될 경우 유전개발 필요성이 줄어 해상 유전개발에 필요한 해양플랜트 발주가 지연되거나 연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올 하반기에만 4건의 원유시추선 계약이 취소되는 등 잇딴 계약 해지로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빅3 업체들이 떠 안은 손실 금액이 최근 1년 동안 수조 원에 달한다. 저유가 흐름이 지속되면서 올 들어 조선 빅3의 해양플랜트 수주 실적은 전무한 상태다. 고유가로 해양플랜트에서 호황을 누렸던 2013년 200억달러(지난해 3분기 기준)가 넘는 수주 실적을 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해양플랜트의 수주 금액은 척당 수십억 달러로 선박 수 척을 수주한 것과 맞먹는 고부가가치 분야"라며 "저유가가 지속될 경우 조선사의 실적에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건설업계도 암울하긴 마찬가지다. 산유국이 몰려있는 중동 지역의 경기 침체로 해외건설 수주액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우리나라의 해외 건설 수주액은 406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570억달러)의 70% 수준이다. 특히 발전소, 가스시설, 정유시설 등 산업설비 수주가 지난해 같은 기간(439억6300만달러)의 절반 수준인 234억달러로 급감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작년 말부터 시작된 저유가의 영향으로 우리의 주요 해외 건설 시장인 중동과 러시아 등 신흥 시장 경기가 나빠지면서 우리 건설업체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저유가로 인해 실적 개선을 꾀하는 산업군도 있다. 원가에서 유류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항공업과 해운업이 대표적이다. 매출액의 약 40%를 유류비로 지불해야 하는 항공업계 입장에선 더 없이 큰 비용 절감이 아닐 수 없다. 업계에 따르면 항공업계 1위 대한항공은 연간 약 3200만 배럴의 항공유를 소비한다. 유가가 연초 예상보다 배럴당 1달러만 하락해도 3200만달러(약 350억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유가 하락이 이익과 직결되는 셈이다. 해운업도 마찬가지다. 통상 해운사의 선대운영 비용 중 유류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 안팎이지만, 최근 유가 하락으로 이 비율이 15~17%대로 떨어졌다. 그만큼 운영비가 줄었다는 얘기다.
정유업계도 저유가 흐름을 반기는 곳 중 하나다. 유가가 급락하지만 않으면 저유가가 유지되는 상황이 고유가보다 실적에 유리하다는 게 관련 업계의 설명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제유가가 급속히 하락하면서 석유제품을 보유하는 것만으로도 손실이 급격히 증가하는 상황만 연출되지 않으면 정유사 입장에선 고유가가 지속되는 것보다는 저유가 흐름이 지속하는 것이 실적에 훨씬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유가가 높을 때보다 저유가에서 정제마진이 높고, 가스와 대체관계에 있는 납사, 벙커유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마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실제 국대 최대 정유사인 SK이노베이션은 국제유가가 급락한 지난해 37년 만에 처음으로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국내 정유사 대부분이 사상 최악의 적자를 냈다. 그러나 저유가에도 불구하고 유가가 안정된 올해는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4사는 수 조원의 이익을 올렸다. 올 들어 3분기까지 정유 4사의 누적 영업이익은 4조원을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유가 하락과 불안정성이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경제에 치명타를 줄 수 있는 만큼 정책적 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광우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로서는 유가 하락이 경제에 호재일 수 있지만, 모든 기업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유가 하락이 경제 회생의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유가에 민감한 기업들은 산업 효율성 제고를 위한 구조조정에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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