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만 체임 노동자 '서러운 설'
지난해말 기준 1조3000여억 임금ㆍ퇴직금 밀려
지난해말 기준 1조3000여억 임금ㆍ퇴직금 밀려
경기침체에 영세사업장 붕괴…5년새 최대수준
[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인천의 한 편의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김모(25)씨. 김씨에게 설은 달갑잖다. 지난해 12월 아르바이트비를 100여만원을 아직까지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3개월 근무를 조건으로 시내 편의점에서 일하던 그는 갑작스런 사정이 생겨 지난 12월 말 일을 그만두게 됐다. 편의점주는 그에게 "만근(滿勤)을 못했으니 마지막 달 월급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당장 이렇다 할 생계수단이 없는 그는 주변 친구ㆍ가족들에게 돈을 마련해 생활해 오고 있다. 김씨는 "설 쇠러 가는 길이 괴롭다"며 "주변에 폐만 끼친 듯 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경기도 성남시 주민 임차진(46)씨. 건설현장에서 목공(木工)으로 일하는 그도 고향 찾기가 민망하다. 지난해 11월부터 한 달여간 광주광역시 남구체육관 건설공사에 참여했지만, 아직까지도 그와 20여명의 동료들은 세칭 '오야지(중간관리자)'에게서 4000만원의 임금을 받지 못했다. 임씨는 "건설현장에서 월 2~3회 수준의 임금체불이 보통이다보니 전에 모아놓은 돈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게 현실"이라며 "설을 쇠려면 그래도 100만원은 있어야 음식도, 세뱃돈도 마련 할 텐데 그게 안 되니 막막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이 코 앞으로 다가왔지만 임금 체불 탓에 고향을 방문 할 경제적 여유가 없는 근로자들이 적지 않다.
1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근로자 29만3000여명에게 지급되지 않은 임금ㆍ퇴직금 총액은 1조3195억원이다. 1인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450만원이 체불임금으로 남아 있게 되는 셈이다.
체불임금의 원인으로는 먼저 '경기침체'가 꼽힌다. 실제 고용부에 따르면 가장 큰 체불임금 발생원인은 일시적 경영악화(56.3%), 사업장 도산ㆍ폐업(27.9%)이었다. 체불액이 가장 많은 것도 5~30인 이하 영세사업장(5897억원, 44.7%)이었다. 지난해 체불임금액이 2009년 1조3438억원을 기록한 이후 최대치라는 점을 감안하면, 경기침체로 인한 영세사업장들의 붕괴가 체불임금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정부의 '솜방망이 처벌'이 체불임금을 키운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악성 임금체불 사업주에 대해서는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엄정하게 처벌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지난해 실제 구속된 악성 사업주는 28명에 불과했다. 고용부와 각 지방자치 단체도 명절 때만 되면 집중지도 단속 기간을 운영하지만 일시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 노동조합 관계자는 "체불임금에 벌금형 등의 가벼운 처벌이 많다보니 악성 사업주들은 '벌금을 내면 그만'이라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며 "단순히 명절 때 반짝 단속으로 해결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노동계에서는 체불임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사업주의 인식개선과 체불임금 관련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백연우 청년유니온 노동상담국장은 "실제 상담사례를 보면 일부 영세 체불사업주들은 근로기준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아예 모른다고 답변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사업주들에게 사업등록 시 근로기준법 교육 이수를 의무화해야 체불임금 발생 시 엄중한 처벌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현석호 건설산업연맹 교육선전실장은 "제도적 차원에서 임금지급확인제ㆍ임금지급보증제도를 도입해 체불임금으로 인한 근로자들의 피해를 줄일 필요가 있다"며 "또 현장에서는 체불임금이 소액이라 신고조차 하지 않는 경우들이 많은 만큼, 체불임금 신고절차도 간소화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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