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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하루키가 묻고 마에스트로가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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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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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일본의 인기작가 무라카미 하루키(66)는 소문난 음악광이다. 소설가가 되기 이전에 직접 재즈바를 운영했다는 이야기는 그의 팬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한 일화다. 팝과 클래식에도 일가견이 있다. 하루키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는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에서 모티브를 얻었으며, 최근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는 프란츠 리스트의 '순례의 해'가 주제가처럼 등장한다. 수만 장의 음반을 보유하고 있는 수집광이기 이전에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음악인임을 자부하는 하루키는 종종 듀크 엘링턴의 말을 인용한다. "세상에는 '멋진 음악'과 '그렇게 멋지지 않은 음악', 이렇게 두 종류의 음악만이 있다"고 말이다.

그런 그가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80)와 만났다. 개인적인 친분으로 세이지와 가끔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하루키는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만 듣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했다. 마침 세이지는 2009년 식도암 수술을 받고 난 후였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이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도 들었을 것이다. 주로 하루키가 물어보고, 세이지가 답하는 이 독특한 형식의 인터뷰집은 이렇게 탄생하게 됐다.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베토벤, 브람스, 말러 등 클래식 음악에 관한 것이지만 종종 나이듦과 인생에 관한 지혜로운 통찰도 엿들을 수 있다.
오자와 세이지는 베를린에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게 사사했고, 1961년 레너드 번스타인이 이끄는 뉴욕 필하모닉의 부지휘자로 취임했다. 1973년에는 보스턴 심포니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해 이후 30여년을 같은 오케스트라를 이끌어 음악사의 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거장들의 밑에서 지휘를 배운 덕분에 세이지는 누구보다 이들의 성격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에 따르면 레너드 번스타인은 '천재' 타입이긴 하지만 오케스트라를 훈련하는 재주는 별로 없었다고 한다. 오케스트라의 모든 단원이 평등하다는 생각에 각자가 자유롭게 연주를 하도록 내버려둬서 종종 음이 삐그덕대는 경우가 생겼다는 것이다. 반면 카라얀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오케스트라를 장악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자신의 지휘가 맞지 않으면 무조건 오케스트라가 잘못한 것이었다.

이 둘의 대화는 주로 하루키의 응접실에 앉아 다양한 음반을 들으면서 진행됐다. 2010년 11월 시작된 이 만남은 이듬해 7월까지 이어졌으며, 장소는 일본을 넘어 스위스, 하와이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하루키는 상대를 배려하면서도 종종 예리한 질문으로 대화를 진행시키고, 세이지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빈 국립오페라극장 음악감독 재임 시절 이야기를 옛날 이야기 풀어내듯 흥미롭게 들려준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소설을 쓰는 하루키와 역시 새벽 시간대에 악보를 해석 한다는 두 거장은 이밖에도 여러가지 공통점을 찾아낸다. 번역의 어려움과 악보를 보는 어려움의 본질,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을 들었을 때의 충격과 경이로움 등에 공감의 목소리를 높인다.

결국 하루키는 둘의 공통점을 세 가지로 정리해낸다. 일하는 것에 한없이 순수한 기쁨을 느낀다는 점, 지금도 젊었을 때처럼 초심을 잃지 않는 마음을 변함없이 갖고 있다는 점, 그리고 고집이 세다는 점. 또 그는 독자들을 홀리는 자신의 글쓰기 기법의 원천이 사실은 음악에 있다는 점도 고백한다. "글 쓰는 법을 어디서 배웠느냐 하면 음악에서 배웠거든요. 거기서 뭐가 제일 중요하냐 하면 리듬이죠. (......) 글의 리듬이란 단어의 조합, 문장의 조합, 문단의 조합, 딱딱함과 부드러움, 무거움과 가벼움의 조합, 균형과 불균형의 조합, 문장부호의 조합, 톤의 조합에 의해 생겨납니다."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 오자와 세이지, 무라카미 하루키 / 권영주 옮김 / 비채 / 1만4000원)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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