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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脫추격 혁신과 추격형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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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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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모님과 우리 부부의 결혼사진을 나란히 놓고 보면 어느 게 60년대 결혼식인지 어느 게 90년대 결혼식인지 헷갈릴 만하다. 이유인즉 시부모님은 당시 파격적으로 양복에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하셨고, 우리는 정반대로 남편은 한복에 두루마기, 나는 무릎까지밖에 안 내려오는 원피스를 입고 결혼했기 때문이다.

남편이나 나나 남들 따라 하는 걸 싫어해 우리 집에는 고단한 일도 많고 즐거운 일도 많다. 남편은 그래도 자기는 남들 하는 거 상관없이 사는 자유로운 영혼(?)인데, 나더러는 남들이 하면 무조건 반대로 하니 남들 따라 하는 것만큼이나 강박적이라고 나름 구별을 둔다. 다섯 식구 중 아무도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데 그 탓에 겪은 일을 쓰자면 한 권의 소설감이다. 어느 날 큰애가 유튜브의 학급 단체 율동 동영상을 보여주는데 큰애만 교복을 입고 다들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미리 공지 사항을 안 챙긴 큰애를 야단치려는데 공지가 바로 전날 카톡으로 와서 혼자 모르고 간 것이었다.
반대로 막내는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잘 갔는지, 학원에서 다른 곳으로 새지 않았는지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동선을 챙기는 엄마들의 정성에 시달리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자동차에는 내비게이션이 없어서 축적별로 다른 지도책을 갖다놓고 쓴다. 덕분에 길치는 면하고 있다. 옷을 사러 갔다가 점원이 요새 이게 유행이라고 권하면 그냥 나와버린다. 덕분에 옷값을 많이 절약했다.

어떤 철학이 있어 거꾸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웬지 남들 따라 하면 손해는 덜 보겠지만 사는 재미가 없을 것 같다. 개인의 삶도 그렇지만 나라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 선진국 따라 산업화하고 기술 개발하며 이룬 기록적 성장을 뒤로 하고, 2000년대 들어서는 탈추격형 혁신시스템, 퍼스트 무버 전략 등 남 따라 하지 말자는 모토가 유행이다. 그럼에도 연구개발 정책만큼은 여전히 추격형 담론이 대세다. 최근 두 개의 연구개발 기획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각각 다른 부서의 공무원들을 만날 일이 있었는데 모두들 처음 던지는 질문이 해외 현황은 어떠냐는 것이었다.

연구개발 계획서나 기획서는 연구배경 및 필요성, 연구 목적, 연구방법 및 추진 전략, 연구 내용, 기대효과 등 상당히 정형화되어있는데 그중 빠지지 않는 부분이 연구필요성에 들어가는 국내외 동향이다.
수차례 계획서를 쓰면서 가장 쉽게 쓰던 부분인데 최근에 준비한 두 기획서는 그것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하나는 선진국에서도 이제 막 시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예 시작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니 다른 나라에서도 하니 우리도 해야 한다는 논리로 수십 년 살아온 공무원들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었다.

예전 한 학회에서 서울대와 카이스트 출신 학생을 여럿 지도했다는 교토대 교수와 얘길 나눈 적이 있다. 한국 학생들은 확실히 뛰어나서 선행연구 조사를 시키면 일본 학생들보다 월등하게 잘 정리해온다고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선행연구를 조사하고 나면 일본 학생들은 이제 남들이 하지 않은 연구를 찾아 떠나는데 한국 학생들은 남들이 많이 하니 그게 뜨는 분야인가 보다 하면서 그걸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2000년대 잇단 노벨상 수상으로 명실상부한 기초과학 세계 3대 강국으로 부상했고 교토대는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수상자를 배출한 곳이다. 한동안 이 얘기를 우리 연구자들이 보다 도전적인 연구를 해야 한다는 취지로 꺼내곤 했지만,요즘 심정으로는 추격형 연구를 한다고 탓할 게 아니라 다른 나라가 어떻게 하는지를 중시하는 '추격형 정책'을 탓하고 싶다. 연구계획서에 연구 내용은 남이 안 하는 창의적인 걸 써야 점수가 올라가는데 연구 배경에서는 남들도 하니 우리도 해야 한다고 역설해야 하는 딜레마란!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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