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나 나나 남들 따라 하는 걸 싫어해 우리 집에는 고단한 일도 많고 즐거운 일도 많다. 남편은 그래도 자기는 남들 하는 거 상관없이 사는 자유로운 영혼(?)인데, 나더러는 남들이 하면 무조건 반대로 하니 남들 따라 하는 것만큼이나 강박적이라고 나름 구별을 둔다. 다섯 식구 중 아무도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데 그 탓에 겪은 일을 쓰자면 한 권의 소설감이다. 어느 날 큰애가 유튜브의 학급 단체 율동 동영상을 보여주는데 큰애만 교복을 입고 다들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미리 공지 사항을 안 챙긴 큰애를 야단치려는데 공지가 바로 전날 카톡으로 와서 혼자 모르고 간 것이었다.
어떤 철학이 있어 거꾸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웬지 남들 따라 하면 손해는 덜 보겠지만 사는 재미가 없을 것 같다. 개인의 삶도 그렇지만 나라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 선진국 따라 산업화하고 기술 개발하며 이룬 기록적 성장을 뒤로 하고, 2000년대 들어서는 탈추격형 혁신시스템, 퍼스트 무버 전략 등 남 따라 하지 말자는 모토가 유행이다. 그럼에도 연구개발 정책만큼은 여전히 추격형 담론이 대세다. 최근 두 개의 연구개발 기획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각각 다른 부서의 공무원들을 만날 일이 있었는데 모두들 처음 던지는 질문이 해외 현황은 어떠냐는 것이었다.
연구개발 계획서나 기획서는 연구배경 및 필요성, 연구 목적, 연구방법 및 추진 전략, 연구 내용, 기대효과 등 상당히 정형화되어있는데 그중 빠지지 않는 부분이 연구필요성에 들어가는 국내외 동향이다.
예전 한 학회에서 서울대와 카이스트 출신 학생을 여럿 지도했다는 교토대 교수와 얘길 나눈 적이 있다. 한국 학생들은 확실히 뛰어나서 선행연구 조사를 시키면 일본 학생들보다 월등하게 잘 정리해온다고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선행연구를 조사하고 나면 일본 학생들은 이제 남들이 하지 않은 연구를 찾아 떠나는데 한국 학생들은 남들이 많이 하니 그게 뜨는 분야인가 보다 하면서 그걸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2000년대 잇단 노벨상 수상으로 명실상부한 기초과학 세계 3대 강국으로 부상했고 교토대는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수상자를 배출한 곳이다. 한동안 이 얘기를 우리 연구자들이 보다 도전적인 연구를 해야 한다는 취지로 꺼내곤 했지만,요즘 심정으로는 추격형 연구를 한다고 탓할 게 아니라 다른 나라가 어떻게 하는지를 중시하는 '추격형 정책'을 탓하고 싶다. 연구계획서에 연구 내용은 남이 안 하는 창의적인 걸 써야 점수가 올라가는데 연구 배경에서는 남들도 하니 우리도 해야 한다고 역설해야 하는 딜레마란!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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