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낙, 무제, 162.2 x 130.3cm, 아크릴과 혼합매체, 2013년

전낙, 무제, 162.2 x 130.3cm, 아크릴과 혼합매체,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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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낙 작가, 17일부터 서울서 첫 개인전


전낙 작가

전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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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우리는 문자의 포화 속에 살아가고 있다. 모두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한다. 그것이 분노든 기쁨이든 간에. 입을 대신한 손이 스마트폰을 찍어대고, 그것은 또한 문법에 맞지 않는 직설화법으로 글자들의 향연 또는 오염을 만들어낸다.

화가 전낙의 그림에는 이 같은 '말(言)' 세상이 묘사돼 있다. 대형 캔버스 위에 녹아든 스티로폼들은 일그러진 우리 시대와 인간 군상을 뜻한다. 세상의 입을 통해 생겨난 말풍선 속에는 때론 환하고, 때론 어두운 사람들의 온갖 마음이 투영돼 있다. 가끔씩은 따뜻한 산골을 그리며, 어떤 때는 피 맺힌 회한이 밀려드는 듯하다.


작가 자신은 그림 속 '말풍선'을 두고 "흔히 만화에서 사용되는 전달기능의 목적기호이지만 실상은 그 속에 갇혀 있는 텍스트나 이미지가 침묵하고 있는 또 다른 세계를 설명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의 작업은 밑그림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스티로폼을 비롯해 아크릴과 먹 등 온갖 혼합재료를 몇 겹씩 도포해 평면을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바탕의 두터운 표층은 마치 수많은 기억의 궤적들을 뜻하고, 캔버스 중심에 위치한 '말풍선'은 언뜻 보기엔 단순하지만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김규현 미술평론가는 "인간 존재의 의미나 자유의지보다 제도나 물질의 척도가 더 중요한 가치로 전도된 현대사회에 대한 반영이자, 사람들이 편리를 위해 정보화된 틀 속에 사고를 가두어 놓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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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작가는 시대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비판하면서 또한 그림 속에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평면과 입체, 본인과 타인, 과거와 현재, 실체와 가상이라는 대립항의 구조가 그림 속에 담겨 있다. 이번 개인전의 제목인 '아 프리오리'(a priori, 선험적 형상, 라틴어로 '먼저'라는 뜻)란 바로 세상과 자신을 톺아보며 깨달은 '자아에 갇힌 현실'을 뜻한다.


이번 전시는 전낙 작가의 첫 개인전이다. 작가의 작업실 벽면과 서랍 곳곳엔 수백점의 작품들이 그의 오랜 작업과정을 얘기해 주고 있다. 평생 동안 그림을 그리고 제자를 길러왔던 그가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뒤늦게 개인전을 열게 된 까닭은 왜 일까? 작가는 "내 작품이 성에 차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보여줘도 될 것 같아 용기를 가지고 전시를 열게 됐다. 급하지 않게 차근차근 하나씩 작품을 내놓아 보려고 한다"고 했다. 이어 작가는 "엄청난 정보가 빠르게 쏟아지는 이 시대에 사실 더럭 겁이 난다. 그래도 겨울비 내리는 어느 날은 가끔씩 쉬어가도 좋지 않을까. 그 비가 그친 후 나비를 부러워 않고 등짐을 즐겨 이는 달팽이 같은 화가이고 싶다"고 말했다. 오는 17일부터 내년 1월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화동. 에이블파인아트뉴욕 갤러리 서울. 02-546-3057.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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