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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 "등산하는 인생 살았다"

최종수정 2014.11.08 18:43 기사입력 2014.11.08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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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

故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나는 그동안 등산을 하는 기분으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나름대로 정상을 향한 높은 이상을 세워놓고 꾸준히 그리고 착실히 한걸음 한걸음을 걸어왔습니다."

향년 92세로 별세한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은 부친인 고 이원만 전 회장과 함께 한국 섬유산업의 역사를 써온 거물이다. 특히 국내 기업인 중 가장 거짓말을 못하는 인물로 꼽힌다.
1996년 현직에서 물러난 이 명예회장은 '솔직해서 손해 봤다'고 말할 정도로 평생 동안 정직과 원칙 중심의 경영을 고집한 기업인으로 유명하다. 또 14년 동안 경영자총협회를 이끌면서 정부를 향해 직언을 서슴지 않으며 경제 원로로서도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코오롱그룹의 창업주인 아버지 고 이원만 회장을 도와 일본에서 공장을 함께 운영하며 2세 경영인이라기보다는 '1.5세'라고 본인 스스로를 표현한다.

"나는 인생의 등산길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으며 소망과 용기를 가지고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가능성을 찾아 도전해왔습니다."
경북 영일군 출생으로 와세대대학교 전문부를 졸업한 고인은 1957년 부친인 이원만 선대회장과 함께 ‘한국나이롱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1960년대와 1970년대 코오롱상사, 코오롱나일론, 코오롱폴리에스터 대표이사를 역임하며 국내 섬유산업 발전을 주도했다.

고인은 지난 1995년 12월 기업 경영을 아들 이웅열 당시 그룹 부회장에게 넘기고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당시 그는 국민에게 따뜻한 옷을 만들어 입힌 점과 경총회장으로 노사화합에 기여한 점,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코오롱 소속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 금메달을 따낸 일이 가장 보람있었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평소 미술에 관심이 많고, 직접 그림을 그린 것으로도 유명했다. 1992년 고희전(古稀展), 2001년 팔순전(八旬展), 2009년 미수전(米壽전)을 열었다. 고인은 산·강·바다 등 자연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많이 그렸다.

1982년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한국경영자상, 고려대 최고경영자교우회 최고경영자대상,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 경영자로서 숱한 수상 경력을 갖고 있다.

고인이 지난 4월 올해로 14회를 맞은 우정선행상 시상식에 참석한 것이 그의 마지막 공식 행보로 남았다. 향년 92세로 일기를 마친 이 명예회장이 매년 빼놓지 않고 챙기는 행사였다.

고 이 명예회장은 2001년 자신의 호 ‘우정(牛汀)’을 따 선행상을 만들었다. 당시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 범죄가 잇따르자 훈훈한 미담을 발굴해 널리 알리자는 취지였다.

"선행은 모래에 쓰이고 악행은 바위에 새겨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선행은 그만큼 쉽게 잊힌다는 뜻이죠. 저는 우리 사회에서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분들의 선행을 모래가 아닌 바위에 새기고 싶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우정선행상 시상식에서 남긴 말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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