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만에 내한공연..노래 소화 못하고, 가사 까먹기 일쑤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 1999년 오스카 시상식에서였다. 당대를 주름잡았던 두 디바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턴의 합동 무대가 이날 시상식의 하이라이트였다.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이 한 무대에 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기회였다. 애니메이션 '이집트의 왕자' 주제곡 '웬 유 빌리브(When you believe)'가 흘러나오고, 흰색 드레스를 입은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턴은 사이좋게 주거니받거니하며 열창했다. 전 세계가 숨죽여 이 무대를 지켜봤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폭발적인 가창력에 많은 이들이 압도당했다.
그런 머라이어 캐리가 한국을 다시 찾는다고 했으니 많은 이들의 기대가 컸을 것이다. 2012년 휘트니 휴스턴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빈자리도 새삼 느껴졌을 지도 모른다. '아윌 비 데어(I'll be there)' '위드아웃 유(Without you)' '히어로(Hero)' 등 추억의 명곡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8일 저녁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의 1만2000여개의 객석이 관객들로 찼다. 쌀쌀한 날씨에 담요까지 두른 사람들도 있었다.
아슬아슬한 드레스 차림의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는 듣기에도 아슬아슬했다. 일부 곡에서는 가사를 잊어버려서 얼버무리기도 했고, 또 다른 곡에서는 코러스와 세션의 비중이 더 컸다. 후반부로 갈수록 목이 풀렸는지 기량을 되찾은 모습을 보였지만 전반적으로 산만하고 지루한 무대였다. 쌀쌀한 날씨와 함께 관객들이 표정도 싸늘해져만 갔다. 과거 히트곡과 최신곡 20여곡으로 구성한 무대에서 안타깝게도 우리가 기대했던 디바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무대 매너도 아쉬웠다. 간주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무대에서 사라져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으며, 마지막 곡 '올 아이 원트 포 크리스마스 이즈 유(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를 부를 때는 별다른 인사도 없이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반주가 계속 흘러나오는 가운데 세션과 코러스, 백댄서, 그리고 아쉬움을 감출 길 없는 관객들만이 노래의 한 대목을 무한반복해서 들어야만 했다. 일부 관객들이 '앙코르'를 외쳤지만 이미 무대 조명은 꺼진 상태였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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