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보다 해몽’은 꿈과 해석의 불일치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해석의 대상인 꿈은 오히려 다기(多岐)하고 산만해서 갈피를 잡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나오는 모든 맥락을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 모든 맥락을 해석하는 것이 불필요하기도 합니다. 꿈의 맥락을 이루는 원형이나 원인이나 예지는 복잡하지 않고 간명한 것인 경우가 많습니다. 꿈이, 애초에 설명 불가능한 뇌의 잉여적 활동이며 그것이 지닌 의미를 탐색하는 것이 어리석음이라 할지라도 꿈의 해석은 삶의 문제를 바꾸거나 삶의 양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힘을 지닐 수 있습니다.
‘꿈보다 해몽’에 붙어있는 조사 ‘보다’는 의미심장합니다. 두 객체를 비교하면서 ‘해몽’을 비교적인 우위에 두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꿈이 팩트이고 해몽은 그것의 주석일 뿐인데, 해몽을 우위에 두는 저 생각은 왜 나온 것일까요. 우리의 삶을 이루는 것, 우리의 판단과 신념을 이루는 것은, 팩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읽고 보는 관점이기 때문입니다. 해석이 꿈을 흔들며 해석의 꼬리가 꿈의 몸통을 좌지우지할 수 있습니다. 해석이 바뀌면 꿈의 본질이 바뀝니다. 꿈을 해석하는 행위들은 꿈의 권력을 인간의 권력으로 바꾸려는 의지이기도 합니다.
꿈의 해석은 영원히 미스터리입니다. 어떤 해석도 증명될 수 없으며 어떤 해석도 확고부동할 수 없게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꿈의 유형들을 분석하여 그것이 어떤 결과나 원인과 연결되어있는가를 찾아내는 노력은, 통계술이기도 하지만, 그 노력 속에는 대개 인간이 미리 결론내려놓은 방침같은 게 있게 마련입니다. 즉 이미 꿈의 해석을 내려놓고 그 해석의 근거를 찾아나서는 것과 비슷합니다. 통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릴 때의 트라우마와 깊은 원형, 혹은 본능적 직관과 심리적 뒤엉킴까지를 동원해야할 때는 해몽의 실타래가 더욱 풀려있습니다. 해몽에는 ‘그런 것’이 애당초 없기에 ‘그럴 듯 한 것’이 기승을 부리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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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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